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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
이란·이스라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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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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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그므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 꺼림칙한 마음을 도무지 떨치기가
어렵다: 존엄, 평등, 하느님, 민주주의, 진보, 적극적으로 의도한 무지,
착한 사람, 카르마. 말하자면, 쉽게 부조리해지는 수많은 단어.
인간
생명이 무엇보다도 존엄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왜 27살 양준혁은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다 홀로 세상을 떴을까1 . 빠른 에어컨 설치가 사람
목숨보다 중대한 일인가. 생때같은 젊은이가 죽었는데 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가. 나의 중학교 동창 정지영은 수련회에서 래프팅을 하다 오대산
계곡 바위틈에 헬멧이 껴 나오질 못했다. 당시 우리를 인솔하던 안전요원은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스물 한두 살짜리 체대생이었다. 액티비티 업체에서
알량한 돈을 아끼지 않고 ’진짜’ 안전요원을 고용했다면 지영은 집에
돌아갈 수 있었을까. 목숨값을 싸게 후려친 탓에 죽은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운다. 덩치 좋은 경호원들 사이에 둘러싸여
위풍당당하게 걷는 좆같은 새끼들, 그러니까 손도 안 대고 사람 수만 명을
죽이는 자들을 함께 떠올리며 울고 또 운다. 악한 것들은 왜 이리도
오래오래 살아남는지. 하는 일이라곤 어렵게 일궈낸 정의(에 가까운 것)를
손바닥 뒤집듯 엎는 것뿐인데. 작년에 있었던 계엄이나, 22년도 미국의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2처럼.
부조리한 것은 제도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종교를 믿기도 좀 곤란하다. 지난 퀴어 퍼레이드에서, 건널목을
지나는 내 앞에 대고 동성과 간음하는 자들은 불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악담한 여자를 기억한다. 찬송가가 크게 흘러나오는 스피커 옆에 선 그는
십자가가 그려진 피켓을 자랑스럽게 흔들고 있었다. 이렇게나 야멸찬
홀대를 당하면 불경한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예수 말씀에 따르면
원수도 사랑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세계에는 원수로도 취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멸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단 말일까? 종교의 폭력이란
얼마나 인터내셔널한지. 지구 반대편에는 야훼가 기원전에 한 약속을
빌미로 모든 것-올리브 숲3 , 어린아이, 임산부, 병원, 신문사-를 때려
부수는 자들이 있다.
세상에 도무지 단순하고 산뜻하게
정의로운 것이 없다. 믿고 의지할 만한 게 없다. 나 자신조차도 그렇다.
가끔 다 알면서 치사한 짓을 한다. 물류창고에서 매년 사람이 죽어 나가는
쿠팡에서 ‘급하니까 이번 한 번만’ 핑계를 대며 물건을 산다. 내 물건을
포장할 때만큼은 아무 일도 없길 빌면서! 이따금은 스타벅스에도 간다.
그곳의 아메리카노를 사는 일은,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는 미사일을 만드는
데 한 푼 보탠 격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한마디로 나는 간혹 아주
못됐다. 그저 티가 잘 안 날 뿐이다. 슬프지만, 모두 나만큼은 못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결한 성품을 가진 인간일지라도 동시대를 산다면 죄를 피할 수가
없다. 예컨대, 한국인으로 태어나 이런저런 인프라를 누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악행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10번째로 무기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우리의 고객 목록에는 당연히 이스라엘도 있다5 . 참고로, 한국은
이스라엘이 민간인 무차별 폭격을 시작한 후에도 무기 판매를 멈추지
않았다.
현대의 죄악이란 촘촘한 그물 같아서 그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결백한 삶이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만 같다. 가만 생각해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정의롭지 않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원죄인가 싶기도 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인간과 동물의 무덤을 밟고 살아갈까. 무서운
일이다. 도덕과 내 존재가 영원히 불화하는 가운데에서 아무튼 살아가긴
해야 할 텐데. 대체 어떻게?
아주 오래전, 내 삶에 주어졌던
선택지 중 하나는 직업 활동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 길을 포기하는 대가로
돌아온 것은 세상에 대한 거대한 부채감과 그것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었다. 당연하게도 시원한 답을 구하진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약간 착했다가 아주 나빴다가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괜찮은 인간이 되려면 약간이라도 착했던 순간을 복기해 봐야겠지?
그렇다면 그때 나는 이랬다: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가끔은 눈물이 맺힌
채로 세상의 슬픔과 분노를 들여다본다. 보광동 재개발로 터전을 잃은
고양이 무리, 가자의 아이들, 지혜복 선생님, 용주골의 성 노동자들,
산재로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노동자, 신장 위구르의 면화 밭,
변희수 하사, 세종호텔의 사람들, 그 외에도 미처 열거하지 못한 차별받는
모든 이들. 슬픔이 내게도 전염되고, 난 생각보다 참 나쁜 새끼였다는 낯
뜨거운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이상하게도, 부끄러울 때마다 더
착해지고 싶다. 그러다 보면 가끔 목소리도 내고 싶고 거리에도 나가고
싶어지고 그런다. 적어도 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