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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흥 없는 전쟁

  [1]
  1991년 걸프전쟁은 미국 CNN 방송사에 의해 생중계 되었다. 상공의 전투기가 포탄을 떨어뜨리는 모습, 이라크 바그다드의 야경 위로 초록빛 포연이 퍼지는 모습을 전세계인이 지켜봤다. 거실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조종석 시점에서 레이저 유도 폭탄이 유연하게 목표를 향해 건물 속으로 들어가 대상을 폭파시키는 모습을 안전하게 목격한다. 민간인 희생이 없는 전쟁, 미국의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불필요한 사상자를 줄인 현대전의 탄생이었다.
  당연하게도, 실상은 달랐다. 민간인이 수도 없이 죽었고 모든 인프라가 파괴되어 재건이 불가능한 수 준에 이르렀으며 당시에 미국이 사용했던 방사능성 무기 열화우라늄탄의 영향으로 이라크엔 기형아 출 생과 암 발생 수치가 폭등했다. 사담 후세인이 걸프전을 두고 ‘모든 전쟁의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로, 미 국의 패권 공포는 중동을 뒤흔들었다.
  1991년의 중계를 시작으로 전쟁은 더이상 일어났던 것이 될 수 없었다.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 다. 몇년째 장기화되며 이제는 지정학적 위기라 불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팔 레스타인 공습이 발생했고, 이스라엘은 뒤이어 중동 지역의 강자로 군림하기 위해 이란의 핵개발을 빌미 삼아 침공을 감행했다.
  익숙한 참상, 무감각한 전쟁이란 말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틱톡 전쟁이라고도 불 린다. 세련되게 편집된 전쟁 영상이 메인 스트림을 타고 선전 되었던 걸프전과 달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참상이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가짜 정보가 섞인 채 날것의 상태로 유통된다. 문제는, 더이상 사람들이 아이들이 죽고 시체가 뒹구는 이미지에 쉽게 감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
  한참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법이라는 주제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왜 일본인들은 과거 전쟁의 과오 를 보상하고 사과해야 하는지, 호주의 이민자들은 어보리진에 대해 어떠한 수준의 심리적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며 죄의식과 연루라는 두 키워드가 남았다. 죄의식은 내가 한 행위를 나의 양심 에 의해 가책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며, 연루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상과 내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말한 다. 죄의식은 내가 한 일로부터 시작해 나와 친밀한 자, 우리나라, 결국엔 인류까지 나아가 ‘어떻게 ‘인간’ 이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한 죄의식으로 확장된다.
  결국 고통의 공감은 나, 나와 비슷한 사람에서 시작해 넓어진다. 그럼 나와 닮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공 감,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의 가자 지구, 이란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지금껏 난 사 람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찌르면 피가 나오고 포탄이 터지면 조각이 나는 몸을 가진 건 같으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년 전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연극을 제작하며 피해 사진 을 수집한 적이 있다. 연습과 공연을 거치며 수십 수백 번을 넘게 그 사진들을 봤고 난 결국 온몸에 자상 이 가득한 사진을 큰 감흥 없이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을 호소하거나, 고통이 너무 커서 호소도 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주로 가만히 있는 편이 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말만 중언부언 반복하다가 사라져준다. 특히 전쟁, 죽음, 폭력 앞에서 입을 더 다물게 된다. 내가 무결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타인의 고통에 정말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사실 이란-이스라엘 전쟁 글감을 받고 고민 끝에 타인의 고통이라는 주제를 꺼내든 것이 왜인지 조 금 불편하게 느껴진다. 전쟁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사람들이 다쳤으며, 구호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지, 왜 중동 지역엔 분쟁이 계속 되는지에 대해 나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고 사람이 이유없이 죽어나선 안 된다는 말만 염불처럼 외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한 번 사회면 기사 에 누군가 달았던 댓글을 본 적이 있다. 기사도 논지도 기억이 안나는데 언제까지 60년대 히피 정신에 머물러 있을 거냐는 말은 지금껏 머리에 콕 박혀 남아있다. 자유, 사랑, 평화 이름만 입에 담아도 좋은 말 들로 전쟁을 이야기 하는 것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난 느낀다. 나이브하다는 표현도 어딘가 거북하다.

  [3]
  쉽게 다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걸프전이 잔인했던 것은 TV 화면을 통해 전세계인을 비행기에 태워 포탄을 떨어뜨리는 깔끔한 쾌감 을 느끼게 했고 그게 전쟁의 다라고 착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포탄이 떨어지는 자리에서 멀어지는 만큼 아픔을 느끼는 마음도 멀어진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을 때 젓가락질 실수로 내 콩국수 국물이 반대편 상사 자리에 튄 적이 있는데, 다 다음날까지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돼서 혼자 있을 때도 자꾸 조그맣게 욕을 했다. (마음 쓰이는 일 이 있으면 틱처럼 반복된다) 이번주 사업 중간보고회를 마쳤는데 발표 분위기가 안좋았다. 식사 자리를 잡아 놨는데 발표자분이 식사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며 집에 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 담당자분 옆에서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사무실로 도망을 갔다. 어느 토요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엄마를 아빠가 못마 땅하게 바라보는 걸 봤다. 저녁에 이야기 나누며 “아빠도 요즘 외롭나보네”라고 한 말에 엄마가 처음으 로 그런 게 아니라 가부장적이라서 그렇다는 말을 했다. 그 단어가 엄마 입에 올랐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 적이고 마음이.. 망가져서 새벽 잠들기 전까지 릴스만 봐야했다.
  삶이 불편할 정도로 이상하게 민감한데 세월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감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굳어져 버려서, 나는 이제 이란-이스라엘 전쟁에도, 무안 공항에도 산청 수해에도 똑같이 아무 말 안 한다. 똑같이 괴로워하고 똑같이 아무것도 안 할 것만 같다. 글을 잘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이런 주제 앞에 서면 아 무슨 말로 끝내야 할지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