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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백권주행(독서모임) 3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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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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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긴개
『몰락의 에티카』 한 권 읽고 평론 운운하기란
택도 없다. 『몰락의 에티카』 한 권 읽고 신형철에 대해 술술 말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고 들면 점점 입이 오므라들 수밖에
없으므로, 더듬거리며 평론의 전체와 부분을 파악해가는 내 뒤에서 너무 큰
돌은 던지지 마시길.
어떤 작품은 평론까지 읽어야 비로소 끝이 난다.
작품의 그림자처럼, 때로는 반사판처럼 따라다니며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야 마는, 그런 평론들이 있다. 물론 독자에게도 최초 일독 후
자신만의 감상이 있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물안개처럼
뿌옇게 산등성이만 가리다가 금세 사라지고 만다. 독자의 머릿속을 채우던
물안개는 평론가가 언어로 쳐놓은 그물에 닿은 뒤에야 하나의 물방울이
된다. 언어화된 감상이란 곧 명확한 관점이다. 안개를 붙잡아 물방울 맺게
하는 것, 그 물방울을 모아 하나의 줄기로 흐르게 하는 것. 평론가의
작업은 이처럼 허공을 갈라 실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제 막 눈을 뜨려는 내게 신형철이 가리킨 것은
한국시다. 시는 언제나 내게 양가감정을 일으킨다. 어떤 시는 난해하다. 그
난해함과 드잡이하는 대신 즐겨보라는 목소리에 떠밀려 나는 시집을 앞에
두고 콧노래를 부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괜시리 미간을 모은다.
그러다보면 어떤 문장은 정말 신탁처럼 마음에 곧장 들이닥칠 때가 있다.
이런 게 시 읽는 방식인가보다-하고 시집을 덮는다. 물안개는 전부 증발된
뒤다. 즐기는 것만이 난해를 수용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두고 싶기도 하다. 모름을 즐기고 싶지만 즐길 수
없고, 모름을 앎으로 변환하는 공식도 찾을 수 없다. 모름이 비추는 것은
나 자신이다. 시를 모를 때 나는 도통 시를 좋아하기가 어렵다. 나를
좋아하기가 어렵다.
시의 한 자 한 자를 원숭이 등털 고르듯 훑던
신형철이 말한다. '누군가를 포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뿐이다. 결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해시'라는
딱지를 붙여 포기의 핑계로 삼는 내게 자격 없음을 고지한다. 비로소 시에
대한 속마음을 들키고 나니 어쩐지 개운해져서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제의 상처, 오늘의 놀이, 내일의 침묵 - 이민하,
『음악처럼 스캔들처럼』(문학과지성사, 2008)]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창작자는 작품을 통제할 수 없다. 작품이라는
결과는 창작자의 의도를 초과할 수 있고, 수용자의 해석은 그 결과를 또
한번 뛰어넘는다. 이것은 즐거운 이중의 배반이다.(p.372)
좋은 시는 지시와 암시의 틈, 재현과 구축의
틈, 대상과 비대상의 틈, 위장된 자유와 완전한 자유의 틈에서 씌어진다,
라고. 요컨대 좋은 시는 있는 세계와 있어야 할 세계 사이에서 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위장의 방법론과 은폐된
대상을 이해하는 일이다.(p.378)
한 편의 시는 어떤 불가피함의 산물이다. 시가
상처의 놀이라면, 아마도 그것은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닐 것이다. (…) 명료한 것은 명료한 대로, 불명료한
것은 불명료한 대로, 그 불가피성을 설득하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이 시집에 묶여 있는 시들을 여러 번 읽었다. 매번 달랐다.
시가 달라질 수는 없을 테니 읽는 이가 달라졌을 것이다. 시를 읽는 일이
본래 이러할 것이고 관계를 맺는 일이 또한 이러할 것이다.(p.390)
이민하의 시에 '환상시', '난해시'라는 이름표가
너무 쉽게 붙은 것에 대해, 시인의 손가락이 지시하는 주체인지 암시인지에
대해, 이민하가 즐기고 있는 시적 놀이의 규칙에 대해, 그리고 이 시들이
품은 비밀에 대해 신형철은 포기하지 않는다. 허공에 손을 뻗어 그곳에
있는 줄도 몰랐던 그물을 당겨온다. 그물에 맺힌 물방울들이 가시적인
크기로 모일 때까지 그는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구분한다. 문장 한 줄,
단어 한 개를 오만 가지 시약에 담가본다. 시와 독자 사이에 놓인 다리를
누구보다 많이 두드려본다.
( 그러니까, 신형철이 제공하는 것은 이케아
매장의 숨겨진 지름길 같은 것이다. 단 하나의 입구와 출구만 설계된
이케아 매장에도 사실은 여러 개의 지름길이 있다. 이것들은 공식적인
출구가 아니며, 기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광대한 매장 전체를
둘러봐야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멀고 먼 단
하나의 출구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은 때때로 카트를 밀고 가는 몸을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신형철이 슬쩍 가리킨다. 여기에도 길이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