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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 독후감

    문학을 터무니없이 모르는데 이 평론집을 읽는다. 강의실을 잘못 들어간 것 같은 당혹스러움과 지루함은 없었다. 작가의 다른 산문에 반해서 이 책으로 흘러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독후감을 쓰는 게 이렇게 창피한 건 처음이다. 문학에 대한 비평을 내 인생을 성찰하는 데에 활용만 했다는 걸 드러내기가 창피하다.

    “미묘하게 서정적인”(228쪽)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것은 “심리학적으로 서정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학적으로 서정적인” 글, “전체의 의미에 종속되지 않는” 글이다. 이 두 뜻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추종하고 싶다. 평소에 헐뜯고 싶은 글이 심리학적으로 서정적이었다고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독후감을 쓰면 쓸수록, 깊은 책을 얄팍하게 핥아서 실생활에 적용하는 과정을 중계하는 기분이다. 괴로워만 하다 시간이 다 되었다. 이제 한 주 동안 다시 책을 즐겨야겠다.

    실패기

    책을 두 주째 읽으면서는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상황이 안 좋아진 건, 그러니까 더 읽기가 지겨워진 건, 목젖까지 음식이 차서 더 넣기 싫어지는 느낌이 든 이유는 처음 읽을 때 가졌던 객기랑 허세가 다해서였다. 나는 수십개의 작품들 중에서 1개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압도적이고 빨아들이는 평론은 한국어 가능자로서 읽고 즐길 수 있었지만 미지의 시, 발췌된 시(소설, 영화, 역사)들은 여전히 끝까지 미지의 것들이었다. ‘그렇구나’, ‘우와..’만 마음 속에 메아리 쳤다. 이런 말들이 다소 공허한 대화 뿐 아니라 다소 공허한 독서를 증명하기도 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앞서 이 책을 ‘즐겼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그 이상의 공부는 이번엔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또다른 부작용이다. ’몰락과 서정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바람이 드는 것이다. 이 또한 맥락이 부재한 채 이상한 감동만 줄창 받아서,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느끼함을 홀로 겪는 부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