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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에티카
이후를 기다리며

    『몰락의 에티카』는 문학평론이 더이상 읽히지 않는 시대에 예외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비평집이다. 2007년 출간으로부터 거진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신형철 평론가의 유려한 산문집을 통해 관심 갖게 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작고한 불문학자 황현산과 함께 대중적으로도 소구력을 발휘할만한 글쓰기를 수행해온 드문 문학평론가기도 하다.

    한편 이 책은 이후에 나온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인생의 역사』와 궤를 달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산문집들이 짧은 호흡과 미문으로 ‘매끄러운 수사학’을 펼치고 있다면 『몰락의 에티카』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당대 문학적 의제의 격전장에 개입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시’라 매도당하는 동세대 시인들을 ‘뉴웨이브’라 명명하며, 왜 그들의 문학이 종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새로운지 논변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문학의 유구한 역사에서 드러나듯, 신진 평론가가 벌이는 일종의 ‘세대 투쟁’으로 다가왔다. 1980년 시인 이성복이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수록된 시 「그날」을 통해 말했던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표현은, 2000년대 들어 신형철에게서 “모두 아픈데, 왜 아무도 병들지 않았는가.”(43p)로 변주된다. 아침에는 전근대이고 오후에는 근대이며 저녁에는 탈근대의 정신적 우주를 유영하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그 시절과 달라진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진단일 것이다.

    또한 그는 “과연 나는 내가 아닌 곳에서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로 요약될 수 있는 라캉의 정신분석이나 지젝에 기대어, 분석주체와 분석가, 현실(reality)과 실재(the real) 등의 개념을 이용해 다양한 한국 소설과 ‘올드보이’ 같은 영화를 분석하고 있다. 어떤 지점에서는 당대 가장 유행하던 이론을 도식적으로 적용했다는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현실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것만으로 소설이 소명을 다했던 시대에서 미끄러져, 현실과 실재가 끊임없이 분열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떻게든 비평적 출로를 찾으려는 치열한 모색으로 감안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과 서문에서 유추할 수 있듯,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5p)하는 몰락의 윤리학은, 20세기 초반 게오르그 루카치가 근대 사회와 충돌하는 '마성적 주인공'을 제시했던 『소설의 이론』 에 빚지고 있는 듯하다. 근대 문학의 종언이 운위되는 시대,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 비극의 예언처럼 실현되어 가는 시대에 마지막까지 문학에서 '문학적인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젊은 비평가의 각오와 다짐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치열함에 감응되어, 삶의 어떤 시기에 이 책을 다시 펼쳤던 것 같다. 한편 긴 시간이 지난 만큼, 저자도 어느새 그가 비평으로 대응했던 기성세대가 되었고, ‘뉴웨이브’라 명명했던 문인들 역시 그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몰락의 윤리 이후, 더욱 원숙해졌을 신형철의 사유가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 다음 비평집이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