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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백권주행(독서모임) 1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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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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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긴개
감은 눈으로 읽는
『몰락의 에티카』
-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바로 그 신형철
신형철은 현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마도 영문학 비평을 가르치겠지. 그의 책을 읽고 한글을
새로 배운 나로서는 신형철이 전국 초중고 국어교과서 저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는 나에게 문학 이전에 한글을 알려준 스승이다.
철학이나 비평의 개념을 이해하려 용쓰기 전에 한국어 사전부터 부단히
뒤적거려야 했다. 이렇게 모든 문장을 명료하고 적확하게 쓰는 사람의
머릿속은 분명 먼지 한 톨 없이 쓸고 닦아져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엔,
필사는 이런 문장을 담아내야 한다. 돌에 새기듯 쓰여진 문장⎻'소설의
주식은 여전히 현실이다. 주식을 거부하고 간식만으로 버티는 다이어트와
흡사한 글쓰기는 결국 영양실조와 아사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소설이
한 시대의 공론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먹고 실재를 토해낼
수밖에 없다.p.43⎻을 베껴야 한다. 그렇게나마 문장 구조와 단어의 쓰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비평가의 문장은 소설가의 문장보다 덜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그래 내가 바보다). 하나하나 뜯어보고
따지기에 천착하는 사람이 보여주고 상상하게 만드는 사람을 넘어설 수
있을까 감히 가늠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작 일곱 쪽으로 실린 프롤로그를
읽고 나는 두려워졌다. 이런 밀도로 쓰인 문장이 칠백 페이지 넘는
분량으로 모여있다. 신형철이 이 글을 쓰며 건너간 문학 비평의 출발점에서
나는 과연 몇 발자국이나 뗄 수 있을까. 같은 길을 걷겠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가 건너간 길이 저쪽이겠거니 하고 방향이라도 짐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문학작품을 읽는 것과 비평을 읽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벼운 독자로서 줄거리와 캐릭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것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어우러지는 지를 감상하다가 불이 꺼지면 현실로
돌아오는 것. 거기까지가 스스로 부여한 역할이었다. 비평은 쓰여지지 않은
내용을 대신 읽어준다. 작품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일이
독자의 몫이었는데 그것을 비평가가 위임받아 대신 해결해주고 있다는
데에서 작은 죄책감을 키울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냥 속
편하게 맡겨버리는 편이 현명한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