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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백권주행(독서모임) 3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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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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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deepeye
문학이든 정치든 세간에 유행하는 세대론의
측면에서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 기존에 있던 것은 쉽사리 과거의
유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한때 세련된 수사로 동세대 뉴웨이브 시인들을
옹호하고, 앞세대 비평가들의 낡은 감성에 반박했던 신형철 역시 그런
전형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후반부의 글을 읽으며 변화가 왔다. 그의
비평적 시선은 젊은 뉴웨이브 시인들의 시가 ‘틀린’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알리기 위해 필사적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서정 시인들의 시를
격하하지 않았다. 이런 접근은 제4부 ‘그가 누웠던 자리’에서 윤동주와
김수영의 시를 다룰 때 역시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에 앞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게 윤동주는
「서시」나 「별 헤는 밤」처럼 교과서에서 접했던 게 전부였고 그저
일제강점기에 순교한 서정 시인일 뿐이었다. 어떤 무지함 속에서 그의
역사적 삶이, 직관적이고 단순한 시 세계 역시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이라
착각했었다. 제대로 된 고민없이 시란 무작정 난해해야 한다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1917년의 윤동주와 1994년에 태어난 나 사이에는 그만큼
간극이 있었다. 이것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의 시대와 세대, 그리고 시의
변모 역시 알아야 했지만 그 번거로움을 피해왔다.
윤동주와의 간극은 애초 1976년에 태어난 신형철
역시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누웠던 자리 - 윤동주의
「병원」과 서정시의 윤리학」에서 내가 교과서적인 시인이라고 여겼던
윤동주에게서 ‘다시’ 문제작을 읽어내기도 한다. 예컨대 시 「병원」은
‘거대한 병동’과도 같던 당시 시대상을 은유하는데, 여기서 입원한 화자는
결핵에 걸린 거라 추정되는 여성 환자를 발견하고 멀리서 관찰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리없이 증발해버린 그녀의 자리에 가서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병원」중에서) 신형철은 무작정 객체(자연, 여성)를
주체(화자)의 관점에서 환원하고 ‘서정적 동일화’를 이루기보다, 화자는
단지 누울 뿐이며 그들이 만나지 않는데 주목한다. 섣불리 “동일화하지
않으면서도 기어이 하나가 되는 이 기술이 바로”(510p), 타자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라 말하는 ‘사이비 유마힐’과 구분되는, 윤동주의 윤리적
태도이자 문제작이라고 명명한 이유인 것이다.
또한 신형철은 시인 김수영을 읽는데 있어서도,
4.19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점으로 변화한 시세계를 면밀히 분석하고,
“요컨대 자유의 증거로 발생하는 혼란은 사랑이다. 그는 죽었지만, 이
사랑을 계속 변주해나갈 수 없을까.”(526p) 되묻는다. 그리고 이 글을 썼던
당시인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정책에 항의해 거리로 나왔던
학생과 시민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4.19를 통해 시민의 자유를 배웠으며,
이어진 5.16 쿠데타에 좌절하지 않고, “썩어빠진 대한민국”의 역사와 “죄
많은 식민지의 다리”까지 사랑으로 끌어안고 넘어가려고 했던 김수영이라면
지금 어떤 말을 했을지 현재적으로 사유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신형철의
비평을 거치며, 교과서 속에 박제되었던 윤동주와 김수영은 비로소 내게
살아서 퍼덕이는 언어를 가진, ‘오래된 미래’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