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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없는 기관

    어떤 것들은 지워지지 않네요. 원치 않았는데 새겨진 것들이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걸 종종 느낍니다. 그것은 일종의 감각 없는 기관. 내가 평소엔 느끼지 못하지만 내 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 뇌 속 어딘가, 모세 혈관 밑, 뼈관절 사이사이에 숨어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트리거에 의해 터져 나와 우리를 삼킬 때야 우리는 그걸 느낄 수 있을 테죠.
    이런 감각 없는 기관은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로 생성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역시 감각 없는 기관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크게 영향을 끼치는 건 아무래도 유년기에 느꼈던 부모님과 그 당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환경. 어쩔 수 없이 나를 만들고 세상을 열어주는 건 부모니까요.

    제가 태어난 곳은 울산, 막 광역시로 승격되어 젊음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던 곳. 수많은 경상도의 젊은이가 모여들었고 그 중엔 저희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가난에 집에서 태어났지만 좋은 흐름 덕에 잘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자수성가에 취한 경상도 아버지의 훌륭한 전형이 되었죠.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화가 많고 고집이 셌네요. 아주 많이. 당연하게도 술도 아주 잘 드셨더랬죠.

    어머니는 아버지와 동네 친구. 아버지를 믿고 고향 영덕을 떠나 울산으로 왔지만, 그게 버거우셨을까요? 어머니는 항상 불안해했고 저는 그 모습을 오롯이 지켜보며 살았습니다.
    그런 집에서도 저는 불만이 전혀 없는 아이였습니다. 항상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부모님도 다를 건 없었으니까. 마찬가지로 피곤하고 힘들고…. 그래서 아빠의 말을 듣기 싫은 것도, 엄마의 말이 피곤한 것도,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도, 다르면 죽는 줄 아는 바보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죠. 저도 다르며 죽는 줄 아는 바보였으니까. 열등하긴 했어도 주류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하게 참기 힘든 날이 도래했어요. 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기관을 어떤 트리거가 건드린 것인지 전혀 모르겠으니까요. 하지만 누나에겐 없는 엄마 아빠에게도 있었는지 모를 무엇인가가 작동을 한 건 확실했습니다. 아버지를 밀쳐 버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평화로운 척하던 집에 오기로 한 파멸이 늦게 도착했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는 하루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답답함은 느낀 순간부터 제곱으로 커지니까요. 밑바닥 치던 성적을 어떻게든 끌어올려 서울로 향했습니다. 지원 없이 집을 떠날 정도로 용감하진 못했던 탓이었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결국 가나안도 도망쳐서 간 곳 아닌가 싶네요. 저는 서울이 별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에워싸던 억압, 만연한 불안이 사라지며 등장한 반짝이는 도시가 서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되게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크고 반짝이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 미생이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것 같은 기분. 그 속에서 저의 억양은 분명 주목을 이끌었지만, 제 말 중에 침묵보다 더 나은 건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돌아오는 시선들이 불쾌했나 봐요. 그때부터 억양을 숨기려 노력했으니까요.
    많은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연극도 하고…. 다양한 경험 속에서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던 지성 세계의 일원으로서의 나. 드디어 환골탈태가 일어난 줄 알았죠, 하지만 그건 오만. 새겨진 무엇인가는 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네요. 조금만 긴장이 풀려도 새어 나오는 거친 억양처럼 나도 모르는 새 어떤 기관들이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막막해지면 누구한테 과외라도 받은 것처럼 완결한 불안을 뿜어냈습니다. 내 불안을 잠재우려 더 날카롭게 이야기하고 타인의 불안 따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그런 말을 했을 때 너무나 놀랐지만, 그건 아주 잠시. 최악의 상황을 재현하려는 것처럼 어머니의 불안을 그대로 빌려다 썼네요.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줬어요. 아빠의 목소리를 빌려 내 도마 위에 그녀를 올려놓고 가슴을 찢어발겼으니까요.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나는 과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그도 그럴 것이 화내는 법 말하는 법 무서워하는 법…. 모든 것을 어머니 아버지를 보며 자랐으니 화를 내며 불안해하는 모습도 닮을 수 밖에. 화가 나면 다 때려 부숴야 직성이 풀리는 분노가 해결 방법이라고 배웠으니 고스란히 물려받았겠지.
    그때서야 실직적인 장기 외에 몸속에 숨어 있는 감각 없는 기관들을 느꼈습니다. 내가 평생 함께 가야 할 장기들, 뇌, 폐, 심장, 위, 장, 허파, 쓸개, 항문… 그것들과 닮은 내 감각 없는 기관. 긁어낼 수 없는 감정과 감각.

    그런데 이것들이 나의 일부로 계속 함께할 것이라는 게 생각보다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전부 혐오스럽고 싫지만…. 저는 어쩔 수 없는 것엔 정말 잘 순응하는 동물인 듯하네요. 상당히 절망스러웠지만, 결국 내 뿌리를 혐오하면서도 내 뿌리를 증명하는 삶을 사는 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에 항상 저항하고 살겠지만 그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 거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제 뿌리가 싫어요. 하지만 지역성 자체는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저는 그들의 성향도 정치색도 문화도 모두 이해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변방의 바다란 그런 곳이기 마련이죠. 하지만…. 거기에 묻은 내 어린 시절과 혐오스러운 피의 향기가 싫을 뿐. 그건 오로지 저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인정하면서부터 무엇인가 달라진 건 확실해요. 내 육체를 구성해주는 것도 결국 부모님이 주신 기관이고, 나의 단독자적인 감각도 결국은 경상도의 사회 분위기에서 태어난 것이니까.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입니다.
    살다 보면 원치 않은데도 주어지는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건 평생을 따라 다닐 수도 있겠죠. 불같은 성격, 첨예한 불안… 원치 않은 고향. 그래도 어쩔까요. 그것마저 나를 구성하는 것들인데. 평소엔 잘 숨어 있어 느껴지지 않더라도 갑자기 터져 삶을 망가뜨려도…. 그것조차 나에게 주어진 삶일 수밖에. 내가 아니면 누가 이해해.

    부정적인 것들을 퇴화시키려 아직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쉽지 않다는 것도 많이 느낍니다. 어느 순간에 어떤 트리거를 만나 작동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나인데. 잘 못 태어났다고 해서 잘못 살아갈 이유는 없겠죠. 할 수 있는 만큼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살아가면 될 뿐. 그 정도면 저는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