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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킹고 스몰띵

    퇴사하고 정릉에 다시 살면서 이 방을 뺐으면 어쩔뻔했나 싶습니다. 작업실 겸 써보자는 대책 없는 생각으로 뒀던 방인데…. 내가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주고 다른 삶의 터전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요. 입학이나 퇴사 같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것만 같은 선택들은 생각보다 별것들이 아니었고, 별거 없이 선택했던 것들이 내 삶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곤 한다는 걸 가끔가끔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단지 국어 성적이 좋아 선택한 국문과도 누나들이 예뻐서 갔던 연극동아리도 그냥 책이나 한번 내볼까 하고 시작했던 독립출판도…. 이젠 단지, 그냥, 한 번 정도로 표현할 순 없게 되었네요. 지금의 나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니까요!

    삶을 작고 가볍게 생각할수록 삶은 더 재밌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별 것 아닌 산책에서 더 재밌는 걸 많이 발견할 수도 있고, 큰맘 먹고 간 행사에서 큰 실망만을 가지고 돌아올 수도 있는 것 삶이니까요. 무겁게 생각하면 실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시작하는 것.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이젠 아네요. '글 쓰고 싶어? 그럼 그냥 블로그 써 별생각 하지 말고'라는 말에 거의 3년째 쓰고 있는데…. 별거 아닌 글자 무더기를 쏟는 일이 저에겐 너무 큰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블로그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별거 아닌 기회들은 세상에 엄청나게 산개해있습니다. 단지 발굴하기 어려울 뿐. 적은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야 할 텐데…. 또 크게 생각한다. 그냥 퍼킹고 하는 거지. 지금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사실은 적금을...) 일자리를 알아보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성에 대해 좀 더 노력하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파킹 고하면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길이 많이 열린다는 걸 항상 느꼈으니까요. 저는 거기서 대부분 틀리지 않은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뭐 여태까지 그랬다고 다음도 그럴 거라는 건 오만이지만 그래도 뭐 자신감 정도는 가져도 되겠지요.

    가끔 제가 얼마나 수많은 것들로 이뤄져 있나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마주한 아주 작은 것들이 모두 제 몸속에 들어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크든 작던 모든 게 다 의미가 되어 있겠지요. 그런 걸 생각하면 어떤 삶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좀 줄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아직 어둡기만 한지만 그래도 나는 아주 작은 의미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누군가 그러더군요. 세상 모든 종교는 '두려워 말라'라고 가르친다고. 두려움은 삶에선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사람을 좀먹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작은 것들이라도 계속 함께할 수 있다면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는 큰 산이 되기도 한다는 걸 지금은 좀 느낄 수 있어요. 뭐 인생 별거 있나 별거 아닌 거라도 퍼킹고 하는 거지. 별거 아닌 거라도 퍼킹고 하면 언젠간 그게 큰 게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꼭 커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냥 내가 열심히 불태웠다 그 정도면 나에겐 떳떳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우리 모두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만 퍼킹고 합시다. 그게 크든 말든 뭔 상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