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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수가 없다

    친구는 어느 날 사라졌다.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것일지도.

    「얘들아 잘 지내? 보고싶다 ㅠ」 오전 7:51

    친구는 늘 안부로 대화를 시작했다. 오붓한 3인 단톡방. 한 명은 미국, 나를 포함한 두 명은 한국에 있다. 태평양 건너에서 날아온 퇴근 인사는 이곳의 출근 시간에 도착한다. 나는 워싱턴 D.C.의 현재 시간을 어림짐작으로도 꽤 정확히 맞출 수 있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거리만큼, 그리고 달에 한 번 대화가 올라오는 시간차만큼 쌓인 근황을 업데이트해 줘야 한다. 요즘 회사가 바빠서 몇 주 째 야근 중이다, 저번달에 한 파마가 벌써 다 풀렸다 등등. 한국에 있는 나와 다른 친구 한 명의 일상은 시시콜콜한 순한맛이다.

    「야 나는 그제 남자친구가 바뀌었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의 매운맛 이야기가 시작되면 카톡 방은 청소년 관람불가로 바뀐다. 동물의 왕국이 시작된다. 친구는 세렝게티의 한 마리 하이에나. 이번 주, 지난주, 저번달의 남자친구가 다르다. 지금 말하는 남친이 저번에 말한 노란 머리 연하 맞냐며 확인을 해야 하는 정도. 20대의 마지막 청춘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있는 친구를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종종 이 친구 몰래 나머지 두 명은 심각해졌다.

    「근데ㅋㅋ 좀 막 나가는 것 같은데」

    「그래도 피임은 했다니까 괜찮지 않을까?」

    「아 애매하네 개인적인 거라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난 모르겠다ㅋㅋㅋ」

    그 하루살이 같은 연애를 말렸어야 했을까. 처음에는 장난 식으로, 그러다가 조금 세게 자제 좀 하라고는 해봤다. 너를 정말로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친구가 할 법한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친구가 메시지 뒤에 숨어 자꾸 대답을 건너 뛰자 보이스톡을 걸기도 여러 번. 그때마다 친구는.

    “너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다 아는데… 외로워서 그런 거지 뭐. 그냥 내가 문제야.”

    이런 결론엔 모두 힘이 빠져버린다. 네가 왜 문제야. 문제가 있다 해도 그건 너가 아니고, 너네…….

    아무튼 친구에게 남자 관계를 아예 끊으라고 강하게 말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 애가 남자친구를 갈아치우며 얻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감각에서 비롯되는 안정감을(비록 하룻밤 짜리더라도), 우리는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나도 여기서 너네 같이 친한 애가 생기면 좋겠어’라고 미국에 간 초반에는 종종 얘기했지만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그 말도 없어졌다. 그리고 곁을 주는 남자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다는 걸 알고 나서는 가끔 나오던 ‘외롭다’는 말도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다행이었다. 그 먼 곳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웠을 친구를 생각하면 남자친구가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으므로. 친구는 우리 말고는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가끔 연락하는 친구 두어 명. 그리고 가족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 듯했다. 묻진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다. 짧은 머리에 보이시한 매력이 있는 친구는 개그를 시크하게 잘 쳐서 인기가 있었다. 우리가 속한 친구 무리는 10명이나 되었다. 누가 누구랑 더 친하기보다 다 함께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니 그 친구와 유독 친해졌다. 딱히 공통점이 있지도 않았고 성격도 잘 맞지는 않았지만. 친구는 말이 많았다. 어제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 주위 사람들, 친구들, 그리고 가족, 고민들. 말도 많고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성격이었다. 그래도 말을 재치 있게 하는 편이라 듣기에 재미있었다. 고민을 들려줄 땐 얘는 이런 생각까지 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본인의 개그에 잘 웃어주고, 고민을 싫은 내색 없이 잘 들어주는 나를 보는 친구의 눈빛이 점차 둥글어졌다. 학기 초 시크함을 갑옷처럼 두르고 틱틱거리는 것을 매력으로 삼았던 그 친구는 이제 내 앞에선 조금 귀여웠다. 이름 순서로 번호를 매기고 자리를 배치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우리의 이름은 붙어 있었고 쉬는 시간마다 ‘야야 내가 어제…’ 하며 등 뒤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익숙해져 갔다.

    학기 초의 어색함이 사라진 교실에 여름이 들이닥쳤다. 교무실에만 에어컨이 있고 교실에는 선풍기만 돌아가던 때였다. 그래도 예쁜 하복에 만족하며 부채로 펄럭펄럭 더위를 쫓던 여름 날, 친구는 종종 하복에 가디건을 걸쳐 입고 왔다. 그냥 패션인 줄 알고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다. 무덥던 여름의 끝쯤 친구는 갑자기 골프채가 얼마나 단단한지 아냐고 물었다. “응? 골프채?” “응. 우리 아빠가 골프를 치거든.” 그저 고급 취미라고 생각했다. “아 그래? 멋지시네. 근데 그게 왜?” “아빠가 가끔 화나면 그걸로 패.” 나는 그 순간 입술이 굳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야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뭐? 체벌 이런 거야? 근데 골프채는 좀…” “아니 뭐 심하게는 아니야.”

    친구의 눈치를 살핀다. 아빠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고 말하는 그 어조는 평이했고 표정은 담담했다. 그래서 심각한 상황은 아닐거라고 애써 넘겼다. 그 뒤로 친구는 종종 아빠가 어제도 화를 냈다, 손을 잘 못 맞아서 여기 멍이 들었다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왔다. 친구가 너무 가볍게 얘기하니 나도 심각해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심각해하면, 그러면 정말로 심각한 일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에. 그런 건 뉴스에서나 있는 일이어야 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정상적인 일. 나는 태연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친구의 묘한 가정사를 소화하려 했지만 체한 듯 속은 더부룩했다. 나는 그 얘길 10명의 친구 무리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인데 퍼트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모른 척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2년 전, 드디어 친구에게 단톡방이 하나 더 늘었다. 고1 때 친했던 10명 중 4명이 모인 단톡방에 나와 그 친구가 더 들어와서 6인 단톡방이 된 것이다. 서로 반가워하며 인사하기 바빴다. 오랜만인 만큼 수다도 이어졌다. 그 안에서는 물리적 거리도 깜빡할 만큼 친구도 시끌벅적하게 곁에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게 그 애에게 좋은 활력을 주길 바랐다. 그러다 그 일이 터진 것은 여름 무렵이었다. 3인 단톡방에 새 카톡이 도착했다.

    「내가 새로 사귄 남친이 좀 또라이 같아」 처음엔 또 어떤 쓰레기를 주웠을까 싶었다. 「나 얘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지금 갇힌 것 같아...」 단톡방에 불이 났다. 「그게 뭔 개소리야. 어떤 상황인데?」 「야 그냥 아무 말 말고 조용히 나와」 「나와서 당장 보이스톡 걸어」 「근데 얘가 총이 있는 것 같아」 「…?」

    아 역시 미국 클라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단톡방을 부여잡으며 계속 말을 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띄엄띄엄 대답이 돌아왔으나 어느 순간 보낸 메시지를 안 읽기 시작했다. 진짜 큰일 났다 싶어 정신없이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를 뒤졌으나 친구의 계정은 모두 사라져있었다. 6인 단톡방에서도 얘는 왜 답이 없냐는 얘기가 나왔다. 때마침 명절을 맞아 고향에 다 모였던 터라 우리는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며 모였을 때였다. 나는 사건을 알려주었다. 누구라도 나은 대안이 없을까 싶어서. 나 혼자 짊어지고 있는 불안과 책임감을 떨치고 싶었다. 나의 얘기에 단번에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일단 얘가 무탈히 있는지 알기 위해선 연락이 닿아야 하는 상황. 누군가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한테 연락을 하는 게 낫지 않아?”

    하지만 그 동시에 우리를 스치는 기억은,

    ”그런데… 걔 아빠하고 사이 안 좋잖아. 오히려 서로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다들 말을 안 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게 우리가 친구를 배려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음을. 결국 친구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설마 무슨 일 있겠어 하는 희망과, 굳이 일을 벌이기 싫은 이기심, 그리고 피로감 때문이었으리라.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귀찮은 것일까. 외면한 것일까. 뭔가가 마음에 끈적끈적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괜히 친구들에게 ‘얘는 아직도 연락이 없다’ 같은 톡을 날렸다. 내가 여전히 친구를 잊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듯이. 은은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두어 달 되었을 무렵, 친구가 멀쩡히 다시 나타났다. 단톡방에서 안부를 물으며. 나는 이상하게 그 애를 책망하고 싶었다.

    「야 저번에 그 집 나왔냐고.. 그거부터 얘기해」

    잘 나왔댄다. 그 말에 몇 달간의 고통은 짜증으로 바뀌었다. 짜증은 훈계로 다시 바뀌어 카톡방에 퍼부어졌다. 아니 그럴 뻔했으나 참았다. 나는 더 이상 남자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졌다. 그리고 그 애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할 연애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주기가 힘들어졌다. 무사하니 됐다.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친구가 돌아온 날로부터 몇 달 후, 갑자기 친구의 연락이 멈췄다. 또 몇 달 후 친구가 (알 수 없음) 상태로 단톡방에서 퇴장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미 몇 번 그런 일이 있었으니. 저러다 몇 달 뒤 갑자기 낯선 계정으로 말을 걸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그 이후로 1년이 지났고 여전히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이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 이상 그 애를 자주 떠올리지 않았다.

    오래 쌓인 시간과 어쩔 수 없는 사정들이 뒤엉킨 문제에 대해 나는,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되돌아본다. 나는 그 애를 포기한 걸까, 아닐까. 나만 포기한 건 아니잖아. 나는 누구보다 친구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할 만큼 했다고 위안 삼는다. 때로 친구에게 같잖은 조언을 하며 얻는 치졸한 우월감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애 앞에서 나는 똑똑하게 인생을 사는 양 굴었던 것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것으로만 친구를 대하지 않았다. 진심은 있었다. 친구도 그것만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한 번 더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다만 후회되는 것이 있다. 어릴 적 여름 날 골프채 얘기를 꺼냈을 때, 여름에 긴 팔을 입었을 때, 멍든 손을 보여줬을 때, 그때 한 번이라도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아무리 부모라도 그건 하면 안 되는 행동 같다고 친구에게 한 마디라도 했더라면, 괜찮냐는 말 말고 그 말을 해줬더라면. 친구가 쉽게 툭 던지던 비밀 같지도 같은 비밀을, 마치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못 견딜 것처럼 말하고 다니던 공공연한 비밀을, 친구 혼자만의 비밀로 두지 말걸. 거기서부터 이미 잘 못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친구를 잃지 않았을 것인가.

    나는 그 친구가 어딘가에서 잘 살아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혼자 버텨온 10년의 시간을 믿기 때문에. 그 친구는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 가고 있을 거라고. 이제 한국의 친구들과 인연을 이어갈 이유가 없어졌을 수도 있겠다고. 모든 걸 다 잊고 새로 출발하고 싶었을 수도 있을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정말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겠기 때문에. 진심을 담아 부디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