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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
버릴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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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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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수피
한 가지 고백하자면, 아빠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빠 생각이 간절하게 날 때가
있어요. 아이 문제로 선생님과 마주 앉을 때, 천장에서 물이 뚝뚝 새는데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를 때, 꼬장꼬장한 어른들과 맞붙기
직전, 보험사 직원과 과실 비율을 놓고 싸워야 할 때, … 생각해 보니 거의
다 갈등 상황이네요.
그럴 만도
하죠. 아빠는 냉소적이고, 이기적이며 배려라곤 모르는 사람이에요. 내가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했을 때도, 위로 대신 “그래서 뭐 먹고 살 거냐” 하던
사람이지요. 새 옷을 사서 기분 좋게 보여주면 “그 나이에 그게
어울리냐”고요. 또 생각해 보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에는 축하보다
“이제 돈 들어가겠네”라고 먼저 튀어나오던 사람이에요. 그뿐인가요,
엄마가 아빠와 협의 없이(협의했다면 불가능했을 테니) 제조사를 통해 새
건조기를 대여했습니다. 그냥 쓸 법도 한데, 실제 구매 금액과 대여 시
지불하는 금액이 상이하다며 소송을 했고(심지어 나 홀로 소송) 결국에는
환불받더군요. 엄마는 그냥 쓰겠다고 악 질렀지만 들을 리가요. 아빠는
감정이 절대 닿지 않는 사람이에요. 인정합니다. 그래도 갈등의
한가운데에서는 이런 아빠가 도움이 되었어요. 아빠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이라고 믿는 이상한 것들을 지키듯이, 내가 조언을 구할 때마다
감정이 닿지 않을 만큼의 냉철한 조언을 줍니다. 그러니까 갈등 상황마다
아빠를 떠올리는 건, 그저 별 의미 없는 반사적인 생각일 뿐이에요.
열두 살 때의 일이었어요, 새벽 한 시, 어떤 아저씨와 두 눈이 퍼렇게 멍든
아줌마가 집으로 찾아왔어요. 아줌마는 소파를 앞에 두고는 무릎을
꿇었어요. 그리고 그 앞에서 아빠는 두들겨 맞았지요. 엄마는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어요. 내가 보는 앞에서, 해가 뜰 때까지요. 아빠의 불륜
때문이었어요.
이후 달라진 건
없었어요. 우리는 여전히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고, 날씨나 반찬 따위
시시한 이야기를 했지요. 그 누구도 그날 밤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모든
일은 있었지만,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오랜 시간 약물을 복용해야만 했습니다. 오랜 뒤에야 알았지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더군요. 엄마가 빌고 아빠가 맞았던 그
날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던 수많은 날, 당연히 미움받아야 할 아빠를
미워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빠가 떠나갈까 사랑을 구걸하던 나, 약을 먹어도
먹어도 헤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집 앞 바다에 갔어요. 그리고 넓고
넓은 바다를 보며 망망대해 끝없는 시간 동안 부유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체가 없는 어딘가에 닿는 순간까지요.
이번 추석은 최장 연휴라고 합니다. 연휴만 되면 불안이 극에 달해요. 나는
다시금 문 앞에 서서 아빠가 ‘필요한 순간’을 기대하고, 그럴 때마다
간신히 일궈낸 일상에서 멀어지는 느낌에 속이 메스껍습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비슷한 음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는 것.
옆 사람과 돌려막기의 의미 없는 안부와 칭찬을 내뱉고, 마음이 가지
않지만 가는 척 또 시간을 허비하는 것, 아빠가 준 감옥 같은 삶에서 나를
붙잡아주는 질서였습니다. ‘휴일’ 속에서는 나를 지탱하는 질서가
멈춥니다. 그런 질서가 없는 지금은 꼭 무법지대 같아요. 저혈압에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한 주를 앓았어요. 그리고 남편은 친구의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이 컨디션에 혼자 아이를 볼 자신이 없었어요. 나는
여전히 아빠가 ‘필요한 순간’을 기대하며 보따리를 챙겼습니다. 삼십만
원에 달하는 관절 약과 함께요. 다섯 시간을 운전하여 또다시 커다란
바다를 마주합니다. ‘그래도 친정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손엔 아이 손을, 한 손엔 관절 약을 들고 집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아빠 손에 약을 쥐여주고는 말했어요. “이거 먹는 거랑 바르는 거랑
같이 있어. 비싼 거야. 내 차에 짐 좀 같이 들어줘”
아빠는 피곤하다며 소파에 앉더군요. 내가 아빠에게 뭘 기대했을까
싶었습니다. 결국 나는 집 밖으로 나와 배낭을 메고 양손 가득 짐 보따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낑낑대며 집에 돌아왔더니 아빠는 관절약을 무릎에
덕지덕지 바르고 있었어요. “아빠는 대체 왜 그래? 설명서는 폼이야?!”
치약처럼 생긴 관절약은 반쯤 짜내진 채 구겨져 있었습니다.
아빠는 나를 낳았기 때문에
길렀어요. 그게 다예요. 낳아보니 알겠어요. 아니면 자식에게 그렇게
못해요. 내 귀한 딸 한 걸음이라도 가벼이 걸어주길 바라게 되거든요.
아빠는 나와의 시간이 사랑이 아니었던 거예요. 사람들은 흔히 말하죠.
자식을 향한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태어나 처음 본 사람, 그 품에서 그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울고,
미소 짓고, 작은 손으로 세상을 붙잡으려 애씁니다. 부모가 상처를 주어도,
모진 말을 해도, 여전히 그 곁에 머무르고 싶어 하죠. 그 용서와 바람,
그리움이 뒤섞인 마음은 계산도 조건도 모르는 사랑입니다. 지금껏 아빠를
사랑했습니다. 그 계산도 조건도 모르는 사랑으로요. 하지만 깨달았어요.
아빠에게 나는 그저 의무감의 그림자,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본
목격한 사람이네요.
더 이상 나는
아빠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 사랑에 매달려, 미워하지 못한 죄로
평생 스스로를 혐오하고 내 심장 파내어 살았으니, 이제 놓아달라 사실
애걸복걸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아빠를 버릴 수 있을까요? 아빠를 버릴 수
없다면 아니, 지금껏 버리지 못했으니 차라리 살아온 나의 시간을 찢어
바다에 흩날려버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