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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의
거짓말

    아주 자주 원나잇을 했다. 그럼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내가 가득 찰까, 텅 빈 동태눈깔로 천장만을 공허하게 봤다. 오늘 처음 보는 남자가 내게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방 안을 한 바퀴 돌고, 아무 데도 닿지 못한 채 공기 속으로 꺼졌다. 그리고 콘돔처럼 쉽게 벗겨져, 습기 속에 썩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면 샤워기 물을 끝까지 틀었다. 그리고 피부가 붉게 일어날 때까지 몸을 박박 닦았다. 나의 모든 것이 벗겨져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수업 중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주머니 속엔 노란 커터 칼끝이 비죽이 나와 있었다. 애석하게도 옥상을 출입하는 철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고, 나는 철문 앞에 쪼그려 앉아 땀으로 미끄러지는 커터 칼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아주 얇게 그리고 길게 선을 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 여섯 번. 영화에서 보면 이렇게 하던데, 아닌가. 피는 생각보다 인색했다. 선홍빛은 번지지도 않고, 마치 나를 시험하든 맺혔다. 죽는다는 게 이렇게도 조용한 일이구나. 얼마나 깊게 베어야 죽을까, 이렇게 죽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발소리가 계단에 울렸다.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심장 소리가 발소리와 뒤섞였다. ‘선도부’라고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고3 선배였다. 그는 내 팔을 잡고 학생부로 향했다. 지각으로 벌을 서는 친구들 옆에서 휴지 몇 장만 손목에 감은 채 담임선생님을 기다렸다. 지각생은 나를 보며 키득거렸다. 강원도 바닷가 작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금세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야. 보자. 너 자해했다며. 얼마나 그었냐?” 그냥 팔을 한 짝 잘라 줄까, 그저 모든 것이 귀찮았다.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왜인지 어릴 때부터 내 삶은 스스로 끝내리라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다는 건 언제나 눅눅하고 축축한 방 안에 평생 갇힌, 벌 받는 일 같았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거짓이다. 내게 사랑을 고백하던 하룻밤의 남자처럼, 부모가 나란히 웃던 식탁의 저녁도, 나를 걱정하던 담임선생님의 눈빛도, 모두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세상 전체가 연극 같았다.

     생각해 보면 저들 말고도 뒤통수 치는 삶을 살던 사람은 또 있었다. 아빠의 형제, 넷째 삼촌이었다. 삼촌은 선천적인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다. 삼촌은 할머니와 함께 살며 새벽마다 닭장을 치우고, 외양간을 청소했다. 외양간에서 나온 똥은 수레에 실려 집 앞 밭에 버려졌다. 우리는 그 밭에서 난 음식들을 먹으며 자랐다. 삼촌은 뒤뚱거렸고, 자주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곧잘 해냈다. 겨울에 삼촌은 장작 몇 개와 못 몇 개를 쥐어 들고는 썰매를 만들어 냈고, 우리는 꽁꽁 언 논을 찾아 한참을 걸었다. 여름엔 수돗가에 호스를 들고 삼촌이 빗자루로 쓰기 위해 기른다는 율마에 물을 주는 척, 하늘로 쏘아댔다. 하늘에서 작고 큰 무지개가 생겼다.

     삼촌은 학교 근처 오일장에서 농작물을 팔았다. 전동 휠체어가 덜컹거리며 흙먼지를 일으킬 때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길을 비켜줬다. 삼촌은 비린내 가득한 어판장 끝자락에 보따리를 풀었다. 푸성귀를 담은 보따리를 풀면, 우리 집 동물들의 똥을 먹고 자란 무와 배추, 고추와 감자가 제각기 흙냄새를 뿜어냈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삼촌 옆에 쪼그려 앉아 종일 흙 묻은 손으로 이천 원짜리 무를 건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늘은 끝나고 뭐 먹을 거야?” 내가 물으면 삼촌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오늘은 만두. 아니면 호떡” 계절마다 우리 앞에 놓이는 농작물이 달랐고, 함께 먹는 간식도 따라 변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장터의 소음이 누그러지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우리는 열 알에 삼천 원인 만두를 나눠 먹었고, 꼬치 어묵에 입을 데이며 웃었다. 도너츠의 설탕가루가 삼촌의 무릎 위에 흩날릴 때면, 삼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등으로 털어냈다. 어느 날, 어판장 아주머니가 건넨 믹스커피 한 잔을 후룩 마시며 삼촌은 말했다. “너는 커서 나 같은 장애인들 재밌게 해줘”

     그러던 삼촌이 어느 날 죽었다. 누구는 심장마비라고 했고, 누구는 합병증, 누구는 감기, 누구는 뇌출혈이라고 했다. 아빠는 내게 장례식도 알리지 않았다. 그 기간동안 출장을 간다고 했고, 엄마는 평소보다 늦게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별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았다.

     자살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삼촌이 죽은지 이 년이 흘렀을 때였다. 이 년 전, 사람마다 제각각의 이유를 말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똥을 퍼다 나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 이게 죽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각이 될 때마다 세상 모든 것이 허무했다. 하지만 아파서 죽었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시간이 지나니 모든 것이 무뎌졌다. 그런데 자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달랐다. 처음으로 돌아갔다. 아니, 더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이 년 동안의 내 슬픔과 애도, 찝찝함과, 허무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모두가 나를 속였다는 분노, 나와 웃으며 죽음을 준비했다는 배신감 그 모든 감정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삼켰다.

     “아빠는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왜 … 대체 왜 숨겼어?” 아빠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홱 들었다. “네가 삼촌이 어떤 사람인 줄이나 알아? 술만 마시면 할머니 패고 … ”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아빠의 어깨를 밀었다. 문이 쾅 닫히며 짧은 진공이 생겼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하고, 들어가서 공부나 해.”

     그 말은 낯설지 않았다. 아빠의 불륜으로 한바탕 일이 있었을 때, 나는 엄마에게 이혼을 권했었고, 엄마는 똑같이 말했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문은 같은 소리로 닫혔다. 나는 그 문 앞에서 멍하니 섰다. 숨겨야 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분노도, 슬픔도, 질문도 다 하찮은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