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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
미치지 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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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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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파마
나는 우주의 기운을 손바닥에 모아 천장을 향해
뻗었다. 슈우우웅. 작은 바람소리를 내며 손바닥에서 파동이 만들어져
천장에 닿아 흩어졌다. 드디어 성공이야!
*
십여년 간의 직장생활 끝에 겨우 집을
마련했다. 마련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전세였지만 어쨌든 앞으로 2년간의
보금자리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작은 원룸에서 사용하던 가구는 모두
버리고 새것으로 바꿨다. 좀 더 좋은 것들로 고르고 골라 집을채웠다.
요즘에는 이사한다고 떡따위를 돌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사하며
시끄러웠을 테고 첫 전셋집 마련이란 사실에 나 역시 들떠 위아래집과
앞집에 답례품용 백설기상자를 하나씩 건네며 인사를 나눴다. 모두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들이었다. 시작이 좋아. 앞으로 너무 잘 될 것 같아.
마음 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하늘 끝까지
퍼져나갔다.
쿵쿵쿵.
퇴근 후 한잔의 맥주와 달콤짭짜름한 치킨으로 저녁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발소리? 아니. 발소리라기엔 너무 크지 않나? 망치소리인가? 간헐적으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한 시간가량 소리가 지속되었다.
아직 겨우 8시 잖아? 그래. 뭐, 나도 이사올때 저렇게 시끄러웠겠지.
위이이이잉.
새벽 5시. 출근하는 누군가를
위해 건강주스를 참 오지게 갈아주나보다. 도대체 무슨 믹서기가 이리도
요란하단말인가? 어쩔 수 없지. 출근하는 사람에게 건강주스를 먹이는
거잖아.
멍멍.
이번에는 개다. 새벽 2시가 되면 어김없이 짖어대는 저 개. 윗집에는 혹시
귀신이라도 사는걸까? 아니면 주인이 매일 이시간에 들어오는 걸까? 어떻게
매일 이렇게 짖어댈 수가 있는거지? 주인은 얼마나 시끄러울까? 나는
머리맡에서 굴러다니는 귀마개를 찾아 귓구멍에 쑤셔넣었다. 이놈의
귀마개는 잠결에 내가 빼버리는 건지 조금만 뒤척이면 빠져버리는건지 새벽
2시와 새벽 5시 나를 깨우는 소리와 덩달아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윗집 사람이 핸드폰을 보고 서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아랫집인데, 개가 새벽마다 너무 짖더라고요.”
“저희 집 개요?”
나를 쳐다보는 표정에서
인사떡을 돌리때보았던 친절한 미소는 찾기 어려웠다. 듬직해보였던 그의
덩치가 날카로운 말투와 함께 나를 압박해왔다.
“저희 집 개는 안 짖는데? 개가 새벽에
짖으면 저희가 시끄러워서 어떻게 잠을 자겠어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윗집 사람은 핸드폰을 보며 나를 스쳐지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순간 심장이 왈칵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처럼 세차게 뛰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화가난건지 긴장한건지
알 수 없었다.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퇴근과 동시에 쿵쿵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집안을 메웠다.
쿵쿵쿵쿵. TV소리를 한단계씩 올렸다. 쿵쿵쿵쿵. 그럼에도 천장을 울리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쿵쿵쿵쿵. 그 소리에 맞춰 오히려 나의 심장박동
소리만 거세졌다.
위이이이잉.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옆자리의 동료가 머쓱해했다. 아. 탁상용 청소기 소리구나.
위이이이잉. 잔뜩 찌푸리는 표정에 만원 지하철에 내 옆에 바싹 붙어 선
남자 역시 어쩌라는 듯 얼굴을 구겼다. 아. 휴대용 선풍기구나.
위이이이잉. 이제는 모터가 달린 날붙이를 쳐다보기만해도 귓가에서 이명이
들리는 듯 했다.
층간소음 해결법을
검색하자 나오는 말들은 거기서 거기였다.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것을 했다고 생각했다. 경비실에 전화하기, 공지문 건의하기, 심지어
가장 하지 말라는 직접말하기까지 내가 가진 모든 용기를 끌어모아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제는 그들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한 그 날. 새벽에는 개짖는 소리와 함께
고성이 오갔다. 간혹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이 모든 소리가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야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미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각종 검색사이트에서 층간소음에 대한 내용을 찾는 것이
일상이되었다. 그리고 결국 유튜브를 켰다. 윗집에 복수하는 방법에 대한
영상들. 막대기로 때리기, 천장을 향해 스피커를 붙이기, 진동계 설치하기.
그 무엇하나 쓸모있어보이는 것들이 없었다. 그러다 만나게 되었다. 나의
구세주, 천풍도사를 말이다.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오는걸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건 이너피스이다. 마음 속 평화. 외부환경과 상관없이
나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 그래, 그들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면 될
일이다. ‘명상으로 삶의 평화를 누리세요.’ 내가 그를 만난 썸네일의
제목이었다. 명상 좋지. 그래 명상을 해보자. 자연이 아닌 도심 속 아파트
거실에서 단촐한 차림으로 마치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듯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풍도사라는 그의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영상을 가득채운 바람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소리, 간헐적으로 들리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도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는 그 모습이 마치 명상이라는 것이 울창한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숭고한 의미의 수련이 아닌 아주 번잡한 속세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해서 흥미로웠다. 우스꽝스러운 이름과 가장
상업적인 유튜브를 통해 세상에 전파하고 있는 것 역시 그의 철학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명상은 시작되었다. 그래, 마음에 평온을 가지게되면 층간소음따위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아가 회사에서 오는 스트레스, 인간관계 문제,
사회의 부조리까지 모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퇴근 후 저녁을
거르고 약 두 시간동안 명상을 했다. 저녁을 거르는 것은 명상의 가장 기본
지침이었다. 명상이라는 것이 결국 정신과 마음을 비우는 것인데 몸을
비우는 것. 그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 영상을
따라했을 뿐인데 몸이 이상하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이너피스.
그렇구나. 나는 홀린듯 다음 단계의 영상을 눌렀다. 명상에 이은 것은 기의
수련이었다. 기의 수련 역시 첫번째 지침은 단식이었다. 속을 비우면 위와
장에 집중될 기의 순환과 운용이 전신과 정신을 향하게 된다. 이와 함께
현관을 제외한 모든 창과 문을 열어 바람을 순환시키고 그 순환의 중심에
내가 들어가 자연의 바람을 만나는 것. 수련의 두번째 지침이었다. 나는
부엌과 거실의 중간에 앉아 온 몸으로 바람을 느꼈다. 영하가 가까운
겨울임에도 피부로 직접 바람을 느끼기 위해 속옷차림으로 두 시간동안
자리를 지켰다. 역시나 며칠이 지나자 피부가 단단해지고 탄력이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겨울이며 여름이며 늘상 달고다니던 감기마저 걸리지
않았다.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약 50개에 달하는 그의 영상을 나는 거의 보았다. 몇 회차 본
것도 있으니 횟수로 치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서너개의 영상. 멤버십 회원을 위한 영상이었다. 나는 고민없이 멤버십에
가입했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장풍의 존재를 말이다. 천풍도사. 그는
5세에 출가하여 한국의 여러 고명한 사찰에서 수련을 하다 소림사에
발탁되어 무공을 연마하고 지금은 중생을 위해 속세로 나와 이너피스를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고 했다. 역시, 보통사람이 아니었구나. 어쩐지
며칠만에 몸에 변화가 생기더라. 그의 특기는 장풍으로 장기간의 수련을
해야만 터득할 수 있는 그 기술을 멤버십회원들을 특별히 공개한 것이다.
역시, 멤버십에 가입하길 잘했어. 장풍은 기의 수련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했다. 마지막 단계라기보다 장풍을 위해 기를 수련한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장풍을 쏘기 위해서는 고도의 수련이 필요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바람을 맞았다면 그 바람을 내 몸속으로 받아들이고 몸
안에서 순환시켜 밖으로 배출하는 것. 그것이 장풍이었다. 나는 장풍수련에
들어갔다. 하루 두 시간이었던 수련시간은 네 시간이 되었다. 나는 집중을
위해 집안의 불과 전자제품을 모두 껐다. 그리고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고
바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계속했다. 수련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은
언제나처럼 윗집의 소음이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몇개월이 지났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에 임했다. 지난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우주의 기운을 손바닥에 모아 천장을 향해 뻗었다. 슈우우웅.
작은 바람소리를 내며 손바닥에서 파동이 만들어져 천장에 닿아 흩어졌다.
드디어 성공이야!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너피스. 나의 수련의 시작은 그것이었지만 그 끝은 복수다. 나의 손을
떠난 장풍은 이제 파동을 그리며 천장에 닿아 여러겹의 원형을 그리게
되었다. 풍선의 바람빠지는 소리에 불과하던 나의 장풍은 이제 어엿한
무기가 되었다. 나는 매일 퇴근 후 네시간의 수련과 두시간의 복수를
반복했다. 수련은 가만히 앉아서, 복수는 가만히 서서 진행하는 일이지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 기나긴 루틴이 지나면 귀마개없이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윗집 사람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 평소와 달리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저… 혹시. 밤마다
진동같은게 울리지 않나요?”
“네?
진동이요?”
“네. 새벽마다 어디서 진동이
울리는지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소리 안들리던데.”
나는 흠칫놀랐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앞집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보다 어딘가 초췌하고 다크써클이 짙어보였다. 나는 스멀스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핸드폰을 바라보며 그보다 한발 앞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 게시판에는
새로운 공지가 붙었다.
- ‘공공주택 에티켓’
- 슬리퍼를 신어요.
- 화장실과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 밤늦게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리지 마세요.
- 이른 새벽 초고속 블렌더 사용을 자제해주세요.
- 바닥에 진동상태의 핸드폰을 놓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