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영수 로고
* 백권야행 1회차 모임에서 각자 기록한 감상입니다.

    생명의 여정 1장 쪼금 못읽음

  • 유기체. 다른 감각이 주는 화학작용. 생명체의 진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책에선 유기체에 대하여 화합이라는 긍정적 의미도 전쟁이라는 부정적 의미도 유기체로 끌어안는다. 이 둘은 다르게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갈등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갈등(사건)이 있어야 작용도 있다. 생명체의 진화는 갈등, 사건에서 시작됐다.

    내가 읽은 분량 속에서의 큰 맥락은 엔지니어링(어떤 동물이 자신의 주변 환경에 가하는 변화이며, 그 변화 자체가 행위의 목적이거나 목적의 일부인 경우) 이다. 생물은 어떻게 엔지니어링을 하는가의 사례로 시작해 엔지니어링은 감각(배고프다,편하다)이 우선인가 행위(사냥하다, 집에 들어간다)가 우선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우리는 대개 배가 고파서 사냥하고, 편하기 위해 집에 들어간다. 감각의 달성을 목적으로 둔 행위들. 그러나 감각의 달성만을 목적으로 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먹고 자고를 반복할 따름이다. 여기엔 갈등이 없다. 진화도 없다.

    저자는 감각과 행위가 순환한다고 한다. “우리는 본 것에 반응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은 바로 다음 순간 우리가 보게 될 장면에 영향을 미친다(110p)” 지각과 행위의 순환은 일어나는 다른 일에 대한 개방성과 가능성을 내포한다. 즉, “순환 고리를 갖고 있지만, 비눗방울처럼 자기 완결적인 구조를 만들지는 않”고 “우리의 행동은 밖으로 뻗어나가고 가지를 치며 다른 존재의 행동과 함께 광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여기엔 갈등이 있고 변주가 있으며 진화로 이어진다.

    동물, 그러니까 물고기나 인간 모두 갈등과 변주로 진화하는데 왜 유독 인간은 다양한 계획을 하고 행위를 하는가. 감각이 행위에 관여하고 예측을 처리하며 계획을 수정하는데 고관여 기관인 뇌가 다른 동물보다 크고 그 활동범위가 넓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보다 다양한 도구를 쓰고 큰 계획을 하여 농사도 짓고 가정을 이루고 국가를 움직인다.

    그런 유독 다양한 계획을 하고 행위하는 인간은, 왜 요즘 행동하길 두려워할까… 상호작용보다 매뉴얼을 따르고 대화로 풀기보다 법에 기대며 몸소 움직이기보단 돈을 찾는다. 그러다보니 직업도 돈이라는 권력 문화적 향유도, 유행이라는 문화권력을 따른다.
  • 가든

    생명의 대순환과 볍계연기

  • 호주 서쪽 끝에 위치한 샤크 베이라는 땅의 남세균 이야기로 이 책은 서막을 연다. 어디에서 온 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산소의 기원이 알지도 못했던 이름의 세균으로부터 등장했다는 것이 좁쌀만 한 지적 허영심의 구미를 당긴다. 남세균은 광합성을 통해 태양 에너지를 저장 가능한 화학 에너지로 변환시켰다. 이 세균의 특별한 점은 이 과정의 부산물로 산소를 뱉어내어 생명의 토대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뱉어낸 산소는 토양을 산화시켜 대지를 붉게 만들었다. 생명체의 피가 붉은 것 또한 산소의 산화 과정에서 나왔다. 토양이 더 이상 산소를 끌어안지 못했을 때 흘러넘친 산소가 대기에 정착하였다. 탄소 기반 생명체, 유기체의 무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하나의 생명이, 또 하나의 생명이 지구라는 무대에 등장하고 지구라는 무대를 바꿔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생명체의 탄생이 생명의 행위를 만들고, 생명의 행위는 다시 지구의 토대를 바꾸며, 바뀐 토대는 또 다른 생명의 잉태를 낳는다.

    불교에는 법계연기, 줄여서 연기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라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기반한 이 이론은, 작게는 개별적인 존재의 인과부터 크게는 삼라만상의 윤회를 그린다. 피터 고프리스미스가 불자인지는 내가 알 길이 없으나, 생명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삼라만상의 커다란 흐름이 하나의 고리 속을 순환한다는 저술은 부처님의 깨달음과 맞닿아있다고 느껴진다.

    세상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존재는 타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영원한 것도 없으며, 죽음조차도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러한 연기(인연과 결과)는 무상과 무아, 대자비로 이어진다. 하나는 전부고 전부는 하나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순환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너무 가볍게 흘려보내고 있다. 장대한 생명의 37억 년 역사 속 짧은 시기를 인류가 지배했으나, 우리의 행동은 우리를 또 우리의 무대를 지배하는 결과를 부르고 있다. 모든 순환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나는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나의 행동이 너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고 살아간다.

    저자는 책에서 가이아 가설(지구 자체가 거대한 생명체라는 가설)을 부정했으나, 최소한 비유적인 의미에서라도 나는 위 가설이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불살의 교리가 대자비에서 나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 대한 자비는 어떻게 탐구될 수 있을까.

    오늘도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좀 더 자비로운 나를 꿈꾸며 글을 줄여본다.
  • 곱슬버들

    생명의 여정을 (쪼금)읽고

  • 몇 달 전에 새로운 질서라는 이름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 수업은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해서 핸드메이드, 그러니까 수작업으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연사님이 코딩은 컴퓨터의 언어로 쓰는 글쓰기이고, 여기에는 지켜져야 하는 질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질서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껴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질서’라는 단어 자체는 제게 살짝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생명’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생각해 보니, 앞선 수업의 선생님 말씀이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생명의 여정에서는 초기 생명체의 본질을 ‘질서의 주머니’로 표현했더라고요. 과학의 관점에서 생명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생각을 달리해 볼 수 있었던 단어였습니다.

    질서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만난 다른 종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주로 포유류랑 식물을 많이 만났어요.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너무 크게 드러나니까, 생명체를 이루는 질서도 시작점이 많이 다르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역시 식물이 짱이었다…!
  • 요새난
    아직까진 『생명의 종착역』이 아닌 『생명의 여정』인거지
  • 피터 고프리스미스는 세상을 허투루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연과 지구를 향한 그의 관심과 몰입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엔 아득하게 광대하다. 그는 『아더 마인즈』에서 『후생동물』로 이어져 『생명의 여정』에 이르는 삼부작을 집필하는 동안, 자신의 의식과 이 세상의 유래를 과학철학적으로 파헤친다. 그는 우리의 어머니 지구에게 바쳐 마땅한 예의를 갖추라거나, 하나의 유기체인 지구가 신성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지키려는 항상성을 개발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설픈 표현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소개하는데 오차가 생기는 것만큼은 그가 이 책에서 절대 용납하지 않는 태도다.

    지구가 갖춘 이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에 관해 여전히 많은 과학자가 생애를 바쳐 작동 원리를 파헤치고 있지만 의식의 유래만큼은 실험실을 벗어나 바다에 가까워질 때 더욱 깊숙이 이해되는 듯하다. 피터 고프리스미스는 집필 내내 바다와 육지에 번갈아든다. 최초의 생명이 발생한 바다와 현재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해치는 인간종이 점령한 육지 사이에서 생명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좇는 과정은 곧 의식의 진화 단계를 따라 밟는 것과 같다.
  • 긴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