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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백권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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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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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정묵
나는 크리스마스를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혹은
그런 사람으로 비친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크리스마스 모임을 열었던 적도 있고, 인스타그램 피드는 서울 곳곳에서
찍은 트리와의 사진으로 가득 찬다. 오른쪽 팔뚝에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새긴 것도 벌써 4년이나 된 일이다. 최근 두 해 동안은
"메리크리스묵스"라는 문장을 담은 엽서를 제작해 선물하기도 했다. - 나는
종종 온갖 단어와 문장에 내 이름의 '묵'을 넣어 변형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번외) 해피묵스이어 - 하지만 누군가 "크리스마스를 왜 그렇게
좋아해?"라고 묻는다면 명쾌하게 답변을 한 적은 없다. 연말이 다가올 때
동네 곳곳을 물들이는 전구 조명과 트리 장식이 예뻐서일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 이전에 재즈 음악을 좋아해서 이를 원 없이 들을 수 없는
지금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고 케이크를
먹으며 입이 즐겁기 때문일 수도 있으려나.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좋아하는
이유를 대기 어렵다니.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시 읽으며 내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크리스마스
정신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으며 단 한 구절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스쳤다. 바로
"크리스마스 정신". 크리스마스에 붙은 정신이라는 두 글자. 크리스마스를
이루는 다양한 치장을 모두 걷어내면 그 안에는 크리스마스 정신이 있다.
오너먼트로 가게를 장식한 사장님의 마음, 코끝에 스치는 찬 바람에
자연스레 캐롤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마음,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고 모임을
잡고 선물과 편지를 주고받는 그 마음에는 크리스마스 정신이 깃들어 있다.
마음과 정신을 구분하는 자세한 개념적 정의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마음에 강력한 행동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정신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니까, 연말이니까 그래야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이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를 완성하는 열쇠인 것 같다.
갓 스무 살이 되어 서울에 온 내 주변에는 꾸준히 편지를 쓰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생일에 한 번, 연말에 한 번은 꼭 편지를 주고받았고, 무언가에
지쳐있을 때면 불쑥 편지 한 통이 찾아오기도 했다. 부모님의 생신에만
숙제처럼 편지를 쓰던 내게는 새롭고 재미난 일이었다. 편지를 써주는
친구들에게 나도 함께 편지를 준비했고, 또 내가 먼저 건네는 일도
많아졌다. 돌아보니 각양각색의 엽서 뒤에 쓰인 친구들의 문장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단한 부분, 또
연약하고 쉽게 쓸리는 부분 모두 편지 속 문장과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다.
차곡차곡 모은 지난 8년 간의 편지는 어느덧 신발 박스 두 통을 가득
채웠다. 자주 열어보지는 않지만, 아직 열어보지 않은 트리 밑의 선물처럼
항상 나를 설레게 한다.
결국
마음이다. 크리스마스 정신이 이끌어낸 그 따뜻한 마음 말이다. 마음이
녹아 있는 편지지 속 문장들이 나를 밥 먹여주거나 육체적으로 지지해
주지는 않는다. 결국 내가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마음의 조각들은, 모두 그
편지 속에 들어있다. 크리스마스는 어찌보면 나의 연약함을 속 시원히
드러낼 수 있는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타인의
마음으로 채우며 가장 충만하게, 또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시기.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소중한 것 같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부터 내려온다는 크리스마스 정신은 지금의 나에게 그런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