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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백권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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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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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미리
찰스 디킨스는 만연체를 쓴다. 하지만 또 다른
만연체를 쓰는 작가 애나 번스의 고래만한 길이의 문장보다 훨씬
따라가기가 혹독했다. 꼬리에 꼬리라도 무는 만연체는 따라갈 수 있다.
얼마나 깊어지든 혹은 쌓아 올려지든 차근차근 이어진다. 하지만 『유령에
홀린 남자와 유령의 거래』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등장하는, 레드로와 그의
거처를 그리는 묘사, ‘한 겨울 해질 녘’을 그리는 묘사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하는 유령처럼 다음을 종잡을 수 없다. 분주한 거리에서 폭풍이
울부짖는 바다로, 쟁기와 써레가 외롭게 버려진 들판으로, 난롯가로, 교회
묘지로, 등대로, 지금에서 먼 옛날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겨 다닌다. 지금껏 스물아홉 번의 한 겨울을 보내고 그보다 많은 해질
녘을 봐왔지만, 그가 관찰한 것들을 읽으며 처음으로 한 겨울 해질 녘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처음에 찾아온 조카처럼 헤실거리고 쓸데없이 인사하는
스스로가 착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고작 표정과
말로 날로 먹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동참을 권유하는 것도 짜증
난다. (그럼 7월 3일에 착해지는 것에도 동참해 주었음 한다. 아무 날도
아니다.) 그래서 스크루지는 물러터지지 않은 매력이 있고 거짓말도 하지
않으며 남한테 폐 끼치지 않는 영감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봉변을 당할
줄 몰랐다. 스크루지가 도와주지 않았다고 내내 헐뜯고 고인이 됐을 때도
모욕하는 사람들이 더 천박하지 않나 싶었다. 디킨스가 권하는 선도
응징하는 악도 귀담아듣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디킨스는 크리스마스에
편승한 게 아니라, 만들어내서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감상을 쓰는 나 또한 응징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