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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권야행 1회차 모임에서 각자 기록한 감상입니다.

    그림에서 쏟아져 나오길

  • “오, 맷. 난 우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어.” 그가 신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밤색 말이 울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말에게 여물을 줘야 할텐데.’
  • p.155
  • 19세기 사람의 몸은 썰매에 실려 나무와 충돌하면 즉사하는, 지금보다 더 약한 몸이었는가. 이승에서는 사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행복할 방법을 찾지 못한 이선 프롬과 매티 실버가 썰매 위에서 긴 주마등을 보고 있을 때, 이런 방법으로는 이들이 저승마저 마음대로 못 가리라는 불안을 갖고 지켜보았다. 예상대로 그들은 살아남았다. 저승은 커녕 옆 동네로도, 옆집으로도 가지 못했고, 이선이 족쇄로 여기는 아내 지나 프롬의 옆에서도 한 발자국을 이동하지 못했다. 수명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24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서 들여다본 집 안에는 프롬 부부와 매티가 세 그루의 나무처럼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있다. 누군가 새하얗게 눈 덮힌 스탁필드를 그리고, 웅크린 집 한 채를 그리고, 그 안에 프롬 가문 사람들을 그려 넣었다. 옴짝달싹 못 하는 그들의 삶이 기괴하다기보다는 서글프다.
  • #집으로돌아가서 #말에게여물을줘야할텐데
  • - 강미리

    사랑을 흉내낸 형벌, 형벌처럼 내린 사랑

  • 내가 그 지역에 좀 더 머물면서 수정같이 맑은 날씨가 지나가고 오랫동안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것을 보았을 때, 2월의 폭풍이 그 운명의 마을 주위에 흰 천막을 둘러치고 3월의 강풍이 난폭한 기병대를 이끌고서 이 폭풍을 지원하려고 돌진해 내려올 때, 나는 왜 스탁필드가 마치 굶주린 수비대가 살려 달라는 애원도 없이 항복하듯 여섯 달 동안의 포위에서 빠져나오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 p.12
  • 큐피드가 난사한 화살이 한 쌍을 이룰 경우, 이것은 언제나 행운인가.

    내가 연모하던 상대가 알고보니 지금껏 나를 짝사랑해왔음을 아는 순간, 이보다 더 짜릿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이선 프롬』의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그런 순진한 확신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체념하듯 받아들인다. 사랑은 그것의 이름을 빌린 형벌이기도 하다는 것을. 운명이나 유전, 기질 같은 것들은 사랑을 조리하는 데 있어 치사량을 넘긴 독극물에 가깝다는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오랜 병구완, 겨울이 점령한 메마른 땅 스탁필드에서의 고립, 그리고 스탁필드의 날씨를 닮은 지나와의 결혼 생활. 이선 프롬은 젊은 처녀 매티 실버를 이 모든 것의 도피처로 삼으려 한다. 매티의 발랄함과 어리숙함, 호기심, 다정함은 기댈 가족 하나 없는 가난한 젊은 여성이 선택한 유일한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어붙은 스탁필드에 고립된 이선 프롬은 그런 모습 하나하나를 무한한 의미를 품은 신호로 느낀다. 젊은 이선은 자신을 기다리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운명을 아직 보지 못했다. 싱싱한 체리색 뺨의 매티가 아내 지나의 흔들의자에 앉는 순간,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이, 그러니까 주인의 얼굴이 침입자의 얼굴을 지워 버리는' 장면은 이선에게 다가올 '너무 많은' 겨울을 예고한다.
  • #너무많은겨울 #이선프롬과그아내인듀어런스
  • - 긴개

    운명에 굴복하기, 운명을 전복하기

  •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꾀하려던 욕망은 다 사라지고 이 조그마한 울타리가 따뜻한 존속감과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 p. 50
  •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살다가 마침내 저들에게로 가겠지.”
  • p. 50
  • #감정 #순응 #충돌
  • 참 추운 계절이다. 이 추운 계절에 겨울 소설을 읽으려니 마음까지 서늘해진다. 그런데 예전부터 생각했듯이 이 겨울이 아니면 언제 따뜻함을 느끼겠는가. 이 추위가 아니면 언제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온기를 느끼겠는가.

    우리 삶에 놓여있는 수많은 상황들이 바로 이런 역설이 아닌가 싶다. 삶이란 춥기 때문에 따뜻하고, 따뜻하기 때문에 더 시린 것이 아니던가.

    작품 속 이선과 매티는 차갑고 매서운 운명 속에 서로에게 온기와 같은 존재였고, 그 따뜻한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친다. 회오리 눈보라처럼 부는 감정의 번뇌와 갈등 속에 그들은 운명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운명을 전복할 것인가에 대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감정이 실체없는 어두운 숲 속의 그림자일지라도. 금방 녹아버릴 눈송이일지라도.

    이 결론이 마음에 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희극적 비극이라고나 할까. 이 슬픈 코미디 같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니스 워튼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뭐였을까.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처절하게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종교 철학에 맥없이 휩쓸리고,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자는 시대정신에 무참히 부딪힌 상처투성이 인간의 부서진 서사가 아니었을까.
  • - 김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