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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백권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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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김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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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미리
제 한 몸 건사하는 것의 벅참을 공유하는 우리는, 다른 몸의 건사를 살피지
못하더라도 질책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몸에 폐라도 끼치지 않는 것을
차선의 목표로 두고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이 차선의 정점인 ’무해함‘의
위상이 높아졌다. 결국에는 주지도 받지도 않기 위해 에너지는 안으로, 또
안으로 저금된다. 하지만 있으리라 믿었던 ‘온전한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힘, 오롯하고 순수한 힘’이 돌연 자취를 감추는 날이 온다.
‘자연스러운 손상’을 먼저 입은 몸은 표면적이 어마어마한 단절을 먼저
보게 된다. 성실하고 선한 심성에서 출발한 노력이 굴절되고 굴절되어
고립에 종착한다.
저자와 같은 병동에서 지낸 중년의 언니들은 민폐와 침해를 내몰지 않는다.
크록스에 붙은 지비츠의 개수만큼 남을 살피는 시선이 여러번이다.
바짓단이 바닥에 닿으면 걷어주고, 소리내서 울면 들어주고, 잦아들면
다가와 위로한다. 돌봄을 제공한 지인들은 회사를 쉬고 소독 티슈로 집 안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조혈모세포 기증자는 멀쩡한 피부에 구멍을 뚫고
아픈 주사를 며칠 동안 맞는다. 남과 내가 서로를 침범하도록 내버려두는
동안, 비로소 ’무너진 자리를 떠받치는 새로운 곁‘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건강할 때보다 건사할 게 늘어난 일상에서도 자신이 사용한
일회용품을 감당할 지구를 직시한다. ‘노는 땅’이라는 이유로 헤집혀질
광장과, 그곳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익명의 타인들‘과, 자신과 부딪혔지만
‘마음을 써서 일하는‘ 간호사를 관찰하고, 그들이 안위를 유지할 방법을
찾는다. 정말로 넓고 깊어서 거대한 사람이다. 바다처럼 큰 어항에 세상의
일부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헤엄치는 것 같다.
p.167 나와 나 아닌 것들은 내 몸을 터전 삼아 시큰둥하게, 혹은 서로
의존하면서, 또는 긴장하고 충돌하고 먹어 없애면서 몸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