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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남일 같지는 않은
그렇다고
내 일인것 마냥은
아닌

수 많은 이야기 속 피가래를 뱉어내던, 야속한 운명에 처해진 가련하고 병든 이들을 생각한다. 질병은 어떨땐 야속한 운명이었으나 때때로 미흡한 자기통제의 결과물로 일축되기도 한다. 나에게서, 나를 둘러싼 주변에서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원망할 수도 없으니, 위로는 비대하게 희망적이고 단순한 모습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운이 없게 걸려버린 만성질환과 함께 살아가며 증상과 질환으로 인한 삶의 변화에 이름 붙이기를 포기하고 이 증상이 내 탓인냥 나의 통제가 부족했던 냥 스스로를 탓하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어린시절 자기소개처럼 따라붙던 질병 덕에 여전히 "너 요즘은 기면증 어때?"라는 질문을 받지만 이것은 나아지는 병이 아니라고. 그리고 부작용과 그 부작용을 없애는 약,을 보조하는 또 다른 약들의 수 많은 스택을 감당하기 어려워 현재는 증상을 개선할 뿐인 각성제를 끊어내고 커피와 담배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대답하는 대신 "응 어릴때만큼은 아니야"라고 대답하게 되어버린 것은 내가 포기해버린 내 질병에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불편함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은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나만 아는 불편을 번역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작가 김도미는 '다종'다감한 사람 같다. 인류애를 버리지 않았기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마저 이해시킨다. 그리고 인간을 넘어 다종생태계에 겨우 인간 하나, 작은 병자 하나가 끼칠 영향을 다정하게 고민한다.

누군가의 투병, 누군가의 부고를 듣는 일이 점점 늘어간다. 너무 남일 같지는 않게, 너무 내 일인 것 마냥 헤비한 자아를 들이대지는 않으며 대꾸하는 법을 모르겠어서 결국 거리감있는 몇개의 단어만 남겨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생이 많다. 응원하고 있어.

가끔은 조금 더 정다운 말을 남길까 하다가도 아는체가 될까봐 상처가 될까봐 삭히는 말이 많다. 책을 읽으며 혹시나 멋진 한마디가 나올까 하여 메모할 것을 준비해두었으나 내게 적합한 언어를 찾지는 못하였다. 가끔은 다정한 언어로 인간다운 대꾸를 남기고 싶을때 나는 어떤 온도를 내뱉어야 할지. 나의 병을 구체화하여 스스로를 이해시키는 것 만큼이나 연습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