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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백권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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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죽은 다음』,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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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진주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는 도처에 죽음이 널려있었다. 그 날 같이 걷던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 길을 걷기 시작 했다고 했다. 작열하는
북부 스페인의 햇빛 아래에서 오렌지와 올리브가 기가 막히게 익어가는
동안 죽은 개구리는 배를 뒤집은 채 말라가고 있었다. 처음 몇 마리는
곁눈질로 겨우 피해갔다. 제대로 쳐다봤다가는 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가 옮을 것 같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 길에는 죽은 개구리며 쥐며
새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도 결국엔 죽은 개구리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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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에서 트럭 테러가 있었던 날, 나는 가우디의 까사
밀라에 있었다. 거리로 난 큰 유리창 위로 증강 현실 거북이가 나풀나풀
날아가는 걸 보던 참이었다. 갑자기 창 밖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공기가 파도치듯
크게 한 번 울렁였고, 창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창에서 최대한 떨어진
벽으로 달려가 붙었다.
‘ 좆됐다. ’
사람들 생각이 들리는 초능력자가 거기 있었다면, 전 세계 언어로
‘좆됐다’가 울려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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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일이 자카르타에서도 있었다. 아시아에서 처음 일어난 IS 테러였다.
수도에서 테러범과의 전쟁을 하는 동안, 나는 조금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고열과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실려가던 중이었다. 식은땀을 하도
흘렸더니 에어컨 빵빵한 밴 안이 너무 추워서 제발 누가 에어컨 좀
꺼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지척에서 수십명, 수백명이 죽어나가도 에어컨의 온/오프가 좀 더 간절한
것. 산다는 건, 아니 살아있다는 건 기대만큼 숭고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것 같다고. 오히려 오락실 고인물들의 얍삽이 스킬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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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의 장례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부고를 알리는 문자를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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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발신]
안녕하세요, 박진주입니다. 나는 이제 막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게 되어 나는 ..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합니다. 대단한 생애는 아니었지만 때때로 꽤 찬란했어요.
덕분입니다. 나는 어느 나무 아래에 있어요. 찾아오기 조금
수고스러운 곳입니다만, 교통 호재가 있어 조만간 수월해질겁니다.
(농담) 그늘이 필요하면 가끔 놀러오세요. 아주 기쁘고, 반갑고,
그리울 거에요. 그 무엇도 아닌 나를 환영해줘서 고맙습니다. 이만
훨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