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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백권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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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죽은 다음』,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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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미리
내세가 아닌 지구에서는 죽은 다음 어떻게 되는가. 없어진다. 재촉도
미룸도 받지 않고 차근차근 남김없이. 이를 외면하고 계속 ’있‘고만 싶었던
건지, 상상이 닿지 않는 부재를 먼지 쌓일 때까지 버려둔 건지, 죽음이
화두가 될 때마다 다음으로 이주해 갈 세상만을 가늠해 왔다. 내 고개는
없는 미래를 줄곧 향해 있었다. 이를 비로소 지금으로, 땅으로, 옆에서
나란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로 고루 돌려주는 이야기들을 『죽은
다음』에서 읽었다. 죽음이 얼토당토않은 새출발의 의미를 벗어나 역사와
현실로 들이밀어졌다.
의식 없는 나를 대신해서 많고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애를 써서 나를
없앤다. 그래서 이 모든 수고를 미리 사양하고 가능한 만큼 생략된 장례를
원하는 목소리들에 공감했다. 하지만 내 시신은, 책을 좀 더 읽어보면,
간편하게 처리하기에는 이미 너무 크다. 어린아이에게부터 내재한 ‘죽음의
서열’에 따라, 열대어보다 훨씬 크고 개보다 커서 그만한 걸림을 강요하는
내 주검이다. 나를 없애줄 사람들과 가장 닮게 생긴 주검이다. 무궁무진한
생명들에게 이미 무엇도 아닌 내가 빚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고집을 없앤 자리에 배려를 채웠는지 섬세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포함된다는 생각이 든다.
p.357
“나였다면”을 생각하지 않는 죽음이 도처에 있다. 그 죽음에 ‘나’를
얽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의 취약함으로 저들을 만나려면 무엇이
나의 삶을 흔들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