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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을
읽고

너무나 당연한 소리이지만,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죽음을 기피한다. 무엇이 우리의 인식을 죽음으로부터 돌려놓은 것일까. 죽음에 대한 혐오인가, 미지에 대한 공포인가. 작가는 죽음의 현장에서 삶을 영위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죽음을 바라보고자 한다.

다시, 너무나 당연한 소리이지만,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는 고통을 느끼지도, 삶을 감각하지도 못한다. 사후세계의 존재는 차치하고서라도 죽은 이가 현실에 영향을 미칠 방법은 내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장례를 치르고 죽은 이를 기리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그 사람과 맺는 마지막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산 사람이 무서운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장례는 결국 관계이고 세상에서 사람을 지우는 장이 아니라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장이라고 이야기한다. 삶의 마지막에,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맺은 관계들과 마지막 관계 맺음을 하는 것이 장례라는 사실을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어려운 가운데 울림이 있던 책이었다. 담담하고 유려한 문장들이 유독 어렵게 읽혔던 책이었다. 죽음을 깊이 생각해 보지도, 나의 죽음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지도 않은 나에게 있어 장례가 마지막 관계 맺음이라는 것은 지금껏 지나간 나의 삶 전반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어떠했나. 나의 장례에서, 남겨질 나의 주변인들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왔나. 지금껏 살아온 삶에서 내 인간관계는 어떠했나. 나의 <죽은 다음>에 남겨질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관계를 남기고 갈 수 있나.

그렇기에 <죽은 다음>은 역설적으로 삶의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나'의 이야기일 것이고, 앞으로 죽어갈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숫자로 자본화된 작금의 장례 현장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남성만이 상주인 문화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성 소수자를 위해 싸워간 사람들의 무연고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늘어가는 반려동물의 장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당연한 듯 입혀질 수의와 짜일 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글의 말미에서 작가는 장례식을 "정상 가족의 삶을 평가하는 최종 시험장"으로 표현한다. 사회의 시선에서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평가하는 장이 되어버렸단 의미가 무겁게 다가온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떠난 이를 애도하며 관계를 아름답게 끝맺는 것이 본연의 장례이지 않을까, 나로 하여금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이 두서없이 흘러갔다 사라졌다.
한동안은 나의 <죽은 다음>을 계속 생각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