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뭐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게이야. 그렇게 말을 입 밖으로
떨어트리는 그 순간의 머뭇거림은 그렇게 길지 않았던 거 같다. 직접
입으로 말하는 건 꽤 오랜만의 일이긴 한데. 머슬 메모리라고 하나. 성인이
되어서 수영 등록하면 ‘어렸을 때 수영 배웠으면 몸이 기억할 거예요.’
강사님이 말씀하시지 않나. 내 혓바닥에 남은 지난 커밍아웃의 기억들이 이
거침없는 고백을 가능하게 한 것일지도. 같이 회사를 시작한 지 4년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정말이지 내 인간됨의 새로운 지평을 갱신해주고 있는
이들에게 왜 지금이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글쎄? 말하자마자 힘들었을 수
있겠다, 우리가 뭔가 잘못한 것들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동업자들
걱정들이 쏟아졌지만 뭐, 커밍아웃이 뭐 대수인가? 보통은 대수이긴 해. 뭐
나야 교활하게 미리 누울 자리 다 보고 발 뻗은 거긴 하다. 완전히
철저하게 이들이 나에게 해코지하거나 어떤 혐오 감정을 품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을 다 한 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감으로 이들의 마음속에
신뢰의 도약을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같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나의
어떤 면모들을 공유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채감을 털어낸 것도 없잖아
있겠지. 누군가에게는 커밍아웃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
이후에 좋은 꼴을 보지 못한 일이 많았을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보니 내가
운이 좋은 경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아무래도 커밍아웃이라는 선택에 대해 내가 좀 나이브naive한 거 같다.
된통 당해본 적이 아직은 없어서 그런가. 나의 커밍아웃 경험을 한번
반추해 보자. 제일 먼저 게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던 게 누구였지. 지금 보니
고등학교 동창 남자애들이었다. 여초인 고등학교를 나와서 서로 맞든 맞지
않든 몇 안 되는 남자애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3년을 보냈다. 아마 7명이서
서로 한 번 이상씩은 싸웠을 것이다. 졸업식 전날 처음으로 수원역에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다 같이 하나씩 자기의 어떤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는
순간이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결국에는
가장 자기의 비밀스러운 약점을 꺼내는 자리가 되었다. 네가 그런 것을
꺼냈으니, 나도 내 것을 보여줄게 하고 나름의 신의를 교환했다. 정체성의
상호 교환은 강제로 같은 반에 묶였던 친구에서 더 오래 만나게 될
인간들로 관계가 넘어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술도 좀 들어갔겠다, 내
차례에서 18년 인생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정체성을 꺼냈다.
약간의 침묵 뒤에 따라오는 ‘힘들었겠다’ 라는 말에 아 이거 성공했다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빙 둘러앉은 남자 놈들이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은 짜릿한 받아들임의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재수를 하러
사라졌으니, 사실 인생 처음으로 내 정체성의 비밀을 공유한 즐거움과
해방감은 누릴 일이 별로 없었다. 그 부분이 당시에는아쉽지는 않았다.
술김에 올랐던 감정들은 일상을 좌지우지할 만큼은 아니었고, 나한테는
정체성보다 당장 앞에 떨어진 미대로의 진학이 더 우선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의 어떤
리밋limit을 해제했다는 것이다. 정규교육과정의 끝이라는 붕붕 뜬 마음도
한몫해,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는 아는 후배에게 고백하고 튀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없지만 내가 좋아하던 후배가 아닌 다른
친구에게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에 대해 써보겠다.) 물론 그때
2학년들 사이에서 아주 크게 소문이 돌아서, 나의 재수와 같이 대학에
들어온 바로 아래 기수 후배 게이들이 나를 한 번씩은 찾았다. 당시에는
영문을 몰랐다 왜 나랑 별로 이야기도 안 하던 애가 자기 학교 것도 아닌
축제에 와서 술 먹고 나를 껴안았었던 건지는. 뭐 그런 와닿지도 않는
뒷이야기 정도로는 나의 나이브함을 혼쭐 내주고 다시 벽장 속으로
돌려보내지는 못했고. 대학교 때는 정말 브레이크가 없는 커밍아웃
트럭이었다. 동기 게이 중 한 명이 기어코 내 고등학교 후배와 사귀게 된
것을 알려줬을 때, 문득 내가 어디 동성 결혼이 합법인 캐나다나
노르웨이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라도 한 것 같았다. 한 학번 한 줌 남자의
3분의 1이 게이임을 받아들이는 미대의 학풍이었을 수도 있으나, 고삐가
풀린 것처럼 대학교 시절 내내 정말 상습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놀랍게도
그때는 내 MBTI의 첫 글자가 E였기에, 나는 미대 안의 온갖 사람이 모이는
지점들을 헤집고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났다. 그 과정에서 대체로 나는
흥미를 끄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더 나아가 내
정체성의 작은 비밀을 그들의 마음속 마지막 성문을 여는 키key처럼 썼다.
술자리든 커피챗이든 쓰잘데 없는 산책이든 서로의 세계를 교환하는 것에
재미가 있던 나는 게임의 보스 공략 패턴 마냥 어느 시점이 되면 내
정체성을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내 첫 커밍아웃의 순간처럼 이 막대한
고백에 때때로 감동받고, 그들의 쓸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 나쁜 버릇은
어쩌면 그들이 나를 오냐오냐해줘서 빚어낸 기술일지도 모르겠네.
이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을까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마치 결혼을 확정 짓기 전에 나의 숨겨왔던 흠을
파트너에게 털어놓는 일처럼. 책임감과 의무감 같은 것이 어느 시점이 되면
과중해지는지도 모른다. 아 내가 이 사람과 이렇게 긴 시간을 웃으며
보냈는데, 친구 비용은 내야 하는 것 아닐까? 이 관계의 전모(?)를
밝히지도 않은 채 상대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들이 나를 마음껏
오해하게 두어도 되는 것일까? 이런 부채감은 보통 내가 상대를 점점 더 내
마음 안쪽에 두면서 생기기 마련이다. 서로의 인사와 작은 습관들,
행동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말로 딱 떨어지지 않는 화학 작용을 거치며
우리는 마음속 울타리의 경계를 정한다. 울타리 바깥에서 천천히 가장
깊은곳까지 사람들을 들여올 때, 어느새인가 중심부에 선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비밀을 두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나의 속을 다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다하면서 오히려 위험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걸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관계는 그대로 일 텐데 필요도 없는 말을 꺼내서
관계를 전혀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보내버리는 것을 아닐까? 말을 던지는
것은 바둑에서 상대의 수를 예측하며 한 점 놓는 것과 같고, 테니스에서
상대가 어떤 방향으로 공을 치게 할지 생각하면서 받아치는 것과도
같다.
대학교 이후로는 커밍아웃의
기회가 별로 없긴 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적극적으로 굳이 말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앞의 이야기를 다 뒤집는 것 같지만 그렇게 나이브하게 굴지
못했다. 굳이 내가 위험해져야 할 만큼 깊은 관계가 적어지기도 했고,
상대를 알아가는 즐거움의 양상이 조금씩 달라져갔다. 어쩌면 지난 시절은
어림, 젊음의 힘이었던 것일지도. 당장 첫 직장에서부터 눈치를 봐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여유 같은 것은 없이 긴장하며 일을 했었으니까. 내
마음속으로 더 누구를 들일 여유가 없었으니 굳이 나의 정체성에 대해 말할
필요도 안 생겼겠지. 하지만 결국 이렇게 커서 내 비밀을 말하는 것은
그렇기에 더 힘이 있는 비장의 수 같다. 더 이상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어른들에게 내 진심을 내보이고, 결국 내가 좋아하는 만큼 그들에게 나를
던져버리는, 이 철저하게 계산적이면서도 하나도 계산적이지 않은 믿음의
발신. 커밍아웃이라는 말도 그냥 말만 놓고 보면 (나를 깊은 곳에서)
꺼내는 것 아닌가. 가장 닫힌 내 안에서 상대의 가장 깊은 마음까지 쏘는
한 방. 결국 커밍아웃의 시점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을
때, 또는 이해해 줄 거라고 믿고 싶을 때 바로 그때인 거다. 그 대책 없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지금도 나는 비장의 수를 던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을 읽을 불특정한 다수의 여러분에게, 나이브한 사랑을 담아,
비열한 장한별은 여기서도 커밍아웃을 카드로 써먹는다.